HANSAE QUARTERLY MAGAZINE
VOL.44 SPRING
HANSAE QUARTERLY MAGAZINE
VOL.45 SUMMER
이용재의 미식에세이
평양과
함흥냉면을 넘어,
차가운 여름 국수의 세계
아직 여름이 한참 남았고, 그만큼 여름 국수도 더 맛있다. 아니, 평양 및 함흥냉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둘의 존재감이 상당하지만 그 외의 여름 국수를 홀대하면 예의가 아니다. 남은 여름을 견디는 데 큰 도움이 될 여름 국수를 살펴보자.
평양과
함흥냉면을 넘어,
차가운 여름 국수의 세계
아직 여름이 한참 남았고, 그만큼 여름 국수도 더 맛있다.
아니, 평양 및 함흥냉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둘의 존재감이 상당하지만
그 외의 여름 국수를 홀대하면 예의가 아니다.
남은 여름을 견디는 데 큰 도움이 될 여름 국수를 살펴보자.
밀면
밀면은 이북 냉면의 계보를 잇는 남한식 냉면이다. 6·25 전쟁 당시 남한이 열세에 몰렸을 때, 부산에 모인 피난민들이 전국 각지의 음식 보따리를 펼쳐 놓는 가운데 등장했다. '밀국수 냉면'의 약칭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밀면은 메밀이나 감자전분이 아닌 밀가루 면을 차가운 국물에 만 냉면이다.
메밀면이 밀가루 면으로 대체된 연유에는 두 갈래 설이 있다. 전쟁 통에 부산에서 메밀가루를 구할 수 없어서, 혹은 원래 메밀면을 말아 팔았으나 인기가 없어 밀가루 면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정설이든 당시 부산에 흔했던 미국의 원조 밀가루로 이북 피난민들이 만든 음식이 밀면인 것만은 확실하다.
진주냉면
진주냉면은 소고기 육수에 멸치, 홍합 등 다양한 해산물을 더해 깊고 시원한 감칠맛을 낸다. 또한 쇠고기 육전을 포함한 각종 고명이 푸짐하게 올라간다는 점에서 평양 및 함흥냉면과 차별된다. 독특하게도 달군 철봉을 넣어 국물의 비린내를 잡는데, 육류와 해산물을 총동원한 육수로 인해 네 맛도 내 맛도 아니라며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막국수
차갑게 먹으며 '물'과 '비빔'으로 나뉘는 형식도 냉면과 같다. 이북과 가까운 강원도가 고향이며 평양냉면처럼 메밀면이 핵심이다. 막국수 이야기인데, 각종 냉면처럼 기원이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은 가운데 196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막 걸러 '막걸리'가 되었듯 막국수도 메밀을 껍질째 거칠게 빻아 반죽해 면을 뽑아 먹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흥미로운 건 막국수가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간 끝에 비교적 최근 새롭게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메밀의 구수함과 어울리는 들기름에 간장, 김 가루, 깨소금을 더해 비벼 먹는 막국수로 2011년 경기도 용인 고기리의 막국숫집에서 개발했다. 참기름에 밀려 만년 2등 취급을 받던 들기름이 명예를 회복하며 새로운 막국수의 형식을 만들어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콩국수
차가운 여름 국수라고 육수 일색인 건 아니다. 그렇다, 우리에겐 완전 채식 냉국수인 콩국수가 있다. 1800년대 말 등장한 저자 미상의 조리서 <시의전서>에 깨국수와 함께 ‘콩국’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콩을 물에 담가 불리고 삶아서 곱게 간 다음 가는 체에 밭친다. 이렇게 낸 국물에 소금으로 간을 맞춘 다음 밀국수를 만다고 하니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바로 그 콩국수다.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콩국수는 1960~1970년대 혼분식 장려 정책에 힘입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쌀이 부족했던 시기에 미국에서 대량 도입된, 저렴한 밀가루를 소비해야 하는 현실에서 콩국물은 맛과 영양 양쪽에서 균형이 잘 맞는 ‘신의 한 수’였다. 흥미롭게도 차가운 콩국물, 즉 두유에 면을 말아 먹는 음식은 한국에만 있다. 중국에 ‘더우장’이라는, 아침에 먹는 콩국물이 있긴 하지만 두유에 더 가까울 뿐더러 따뜻하게 먹는다.
초계국수
초계국수는 북한의 평안도 및 함경도 지역에서 유래된 음식으로 이름처럼 식초로 맛을 낸 닭국물에 면을 만 음식이다. 1700년대 조리서인 <증보산림경제>에 초계탕으로 등장했는데 명칭과 조금 달리 냉채에 더 가깝다. 1930년대 이석만의 <간편요리제법>,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 등에도 기록돼 전해 내려왔다.
원래 초계탕은 궁중 연회 음식이었고 일반에는 근래에 전해졌다. 파, 생강, 마늘을 넣고 삶아 식힌 닭 국물에 간장, 식초, 소금, 그리고 겨자로 간을 한 뒤 오이와 표고 및 목이버섯, 삶은 닭고기를 올린다. 원래 녹두묵을 말았지만, 메밀국수에 이어 밀면을 말아먹는 형식이 보편화되었다.
칡냉면
칡냉면은 칡의 대량 생산지이자 지리산 인근 지역인 함양, 남원 등에서 비롯되었다. 밀가루에 원래 냉면의 재료인 고구마 전분 대신 칡 전분을 더해 뽑은 면에 살얼음 육수와 새콤달콤한 양념장을 더해 만든다. 1982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유천냉면에서 처음 판매를 시작했고 한때 전국 골목상권과 배달 문화를 평정했다.
김치말이
평양냉면의 기세가 워낙 등등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자신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축한 또 하나의 냉국수가 있다. 동치미 국물 바탕의 김치말이다. 동치미가 맛있기로 유명한 황해도 지방에서 국물에 밥을 말아 끼니를 간단히 해결했는데, 조선 후기에 꿩 혹은 소고기 육수를 더하는 방식으로 발전한 뒤 1950년대에 한국 전쟁 피난민들을 통해 남쪽으로 전파되었다.
열무국수
‘여린 무’를 의미하는 열무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재배했는데, 본격적으로 김치를 담가 먹은 건 재배 기술 및 김치 문화가 발달한 근현대 이후다. 김치를 담가 잘 익힌 뒤 냉장고에 차게 두면 상큼함과 시원함이 두드러지니 다른 국물을 더하지 않고 국수만 말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열무국수도 고추장 양념을 쓴 비빔국수와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만든 물국수로 나뉘니 특히 여름만 되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비빔라면
1984년 비빔라면이 탄생했다. 최초의 대량 생산 라면이 1963년 등장했으니 21년 만의 일이다. 고작 3분이면 면을 삶을 수 있으니 아주 빠르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데다 장을 만드는 수고를 덜어줘 비빔라면은 빠르게 퍼져나가 자리를 잡았다. 출시 이후 42년이 흐른 지금은 완전히 고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모든 라면 제조업체가 나름의 개성을 지닌 제품을 출시해 가히 춘추전국시대다.
출시 당시에는 여름 한정 제품이었으나 인기를 누리는 한편 냉방이 보편화되면서 비빔라면은 이제 사시사철 즐길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이 더운 계절 특히 비빔라면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묘책은 바로 얼음물이다. 면 삶는 물을 끓일 때 대접에 얼음물을 만들어 둔다. 그리고 면을 다 삶아 흐르는 물에 헹군 다음 얼음물에 30초~1분 정도 담갔다 건지면 한결 더 꼬들꼬들하고 시원해진다.
밀면
밀면은 이북 냉면의 계보를 잇는 남한식 냉면이다. 6·25 전쟁 당시 남한이 열세에 몰렸을 때, 부산에 모인 피난민들이 전국 각지의 음식 보따리를 펼쳐 놓는 가운데 등장했다. '밀국수 냉면'의 약칭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밀면은 메밀이나 감자전분이 아닌 밀가루 면을 차가운 국물에 만 냉면이다.
메밀면이 밀가루 면으로 대체된 연유에는 두 갈래 설이 있다. 전쟁 통에 부산에서 메밀가루를 구할 수 없어서, 혹은 원래 메밀면을 말아 팔았으나 인기가 없어 밀가루 면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정설이든 당시 부산에 흔했던 미국의 원조 밀가루로 이북 피난민들이 만든 음식이 밀면인 것만은 확실하다.
진주냉면
진주냉면은 소고기 육수에 멸치, 홍합 등 다양한 해산물을 더해 깊고 시원한 감칠맛을 낸다. 또한 쇠고기 육전을 포함한 각종 고명이 푸짐하게 올라간다는 점에서 평양 및 함흥냉면과 차별된다. 독특하게도 달군 철봉을 넣어 국물의 비린내를 잡는데, 육류와 해산물을 총동원한 육수로 인해 네 맛도 내 맛도 아니라며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칡냉면
칡냉면은 칡의 대량 생산지이자 지리산 인근 지역인 함양, 남원 등에서 비롯되었다. 밀가루에 원래 냉면의 재료인 고구마 전분 대신 칡 전분을 더해 뽑은 면에 살얼음 육수와 새콤달콤한 양념장을 더해 만든다. 1982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유천냉면에서 처음 판매를 시작했고 한때 전국 골목상권과 배달 문화를 평정했다.
막국수
차갑게 먹으며 '물'과 '비빔'으로 나뉘는 형식도 냉면과 같다. 이북과 가까운 강원도가 고향이며 평양냉면처럼 메밀면이 핵심이다. 막국수 이야기인데, 각종 냉면처럼 기원이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은 가운데 196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막 걸러 '막걸리'가 되었듯 막국수도 메밀을 껍질째 거칠게 빻아 반죽해 면을 뽑아 먹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흥미로운 건 막국수가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간 끝에 비교적 최근 새롭게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메밀의 구수함과 어울리는 들기름에 간장, 김 가루, 깨소금을 더해 비벼 먹는 막국수로 2011년 경기도 용인 고기리의 막국숫집에서 개발했다. 참기름에 밀려 만년 2등 취급을 받던 들기름이 명예를 회복하며 새로운 막국수의 형식을 만들어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김치말이
평양냉면의 기세가 워낙 등등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자신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축한 또 하나의 냉국수가 있다. 동치미 국물 바탕의 김치말이다. 동치미가 맛있기로 유명한 황해도 지방에서 국물에 밥을 말아 끼니를 간단히 해결했는데, 조선 후기에 꿩 혹은 소고기 육수를 더하는 방식으로 발전한 뒤 1950년대에 한국 전쟁 피난민들을 통해 남쪽으로 전파되었다.
콩국수
차가운 여름 국수라고 육수 일색인 건 아니다. 그렇다, 우리에겐 완전 채식 냉국수인 콩국수가 있다. 1800년대 말 등장한 저자 미상의 조리서 <시의전서>에 깨국수와 함께 ‘콩국’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콩을 물에 담가 불리고 삶아서 곱게 간 다음 가는 체에 밭친다. 이렇게 낸 국물에 소금으로 간을 맞춘 다음 밀국수를 만다고 하니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바로 그 콩국수다.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콩국수는 1960~1970년대 혼분식 장려 정책에 힘입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쌀이 부족했던 시기에 미국에서 대량 도입된, 저렴한 밀가루를 소비해야 하는 현실에서 콩국물은 맛과 영양 양쪽에서 균형이 잘 맞는 ‘신의 한 수’였다. 흥미롭게도 차가운 콩국물, 즉 두유에 면을 말아 먹는 음식은 한국에만 있다. 중국에 ‘더우장’이라는, 아침에 먹는 콩국물이 있긴 하지만 두유에 더 가까울 뿐더러 따뜻하게 먹는다.
열무국수
‘여린 무’를 의미하는 열무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재배했는데, 본격적으로 김치를 담가 먹은 건 재배 기술 및 김치 문화가 발달한 근현대 이후다. 김치를 담가 잘 익힌 뒤 냉장고에 차게 두면 상큼함과 시원함이 두드러지니 다른 국물을 더하지 않고 국수만 말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열무국수도 고추장 양념을 쓴 비빔국수와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만든 물국수로 나뉘니 특히 여름만 되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초계국수
초계국수는 북한의 평안도 및 함경도 지역에서 유래된 음식으로 이름처럼 식초로 맛을 낸 닭국물에 면을 만 음식이다. 1700년대 조리서인 <증보산림경제>에 초계탕으로 등장했는데 명칭과 조금 달리 냉채에 더 가깝다. 1930년대 이석만의 <간편요리제법>,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 등에도 기록돼 전해 내려왔다.
원래 초계탕은 궁중 연회 음식이었고 일반에는 근래에 전해졌다. 파, 생강, 마늘을 넣고 삶아 식힌 닭 국물에 간장, 식초, 소금, 그리고 겨자로 간을 한 뒤 오이와 표고 및 목이버섯, 삶은 닭고기를 올린다. 원래 녹두묵을 말았지만, 메밀국수에 이어 밀면을 말아먹는 형식이 보편화되었다.
비빔라면
1984년 비빔라면이 탄생했다. 최초의 대량 생산 라면이 1963년 등장했으니 21년 만의 일이다. 고작 3분이면 면을 삶을 수 있으니 아주 빠르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데다 장을 만드는 수고를 덜어줘 비빔라면은 빠르게 퍼져나가 자리를 잡았다. 출시 이후 42년이 흐른 지금은 완전히 고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모든 라면 제조업체가 나름의 개성을 지닌 제품을 출시해 가히 춘추전국시대다.
출시 당시에는 여름 한정 제품이었으나 인기를 누리는 한편 냉방이 보편화되면서 비빔라면은 이제 사시사철 즐길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이 더운 계절 특히 비빔라면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묘책은 바로 얼음물이다. 면 삶는 물을 끓일 때 대접에 얼음물을 만들어 둔다. 그리고 면을 다 삶아 흐르는 물에 헹군 다음 얼음물에 30초~1분 정도 담갔다 건지면 한결 더 꼬들꼬들하고 시원해진다.

약력
이용재 음식 평론가 겸 번역가. 한양대학교와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건축 및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고, 애틀랜타의 건축 회사 tbs 디자인에서 일했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저자로서 ‘맛있는 소설’,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미식대담’, ‘조리 도구의 세계’, ‘식탁에서 듣는 음악’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실버 스푼’, ‘뉴욕의 맛 모모푸쿠’, ‘인생의 맛 모모푸쿠’,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