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은 교수의 과학이야기

고분자를
통해

보는 세상

고분자를 
통해
보는 세상

필자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다. 그때는 안경알을 유리를 할지 플라스틱으로 할지 물어보던 시절이었다. 유리는 긁힘에 강하고 더 또렷하게 보이지만 깨질 수가 있어서, 한창 뛰어놀 나이의 어린이들은 보다 가볍고 충격에 강한 플라스틱 렌즈를 주로 썼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시력은 계속 떨어졌다. 어느 날 안경점에 갔더니 그냥 렌즈를 쓰면 너무 두꺼워지니 이중 압축 렌즈를 쓰라는 권유를 들었고, 시간이 더 흘러 고등학교 즈음부터는 삼중 압축 렌즈를 썼다. 물론 그때는 미래에 고분자를 연구하고 그 와중에 고분자의 굴절률에 대한 문제도 들여다보게 될지는 전혀 몰랐다.


우리가 세상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빛이 있기 때문이다. 사물에 부딪혀 반사된 빛이 망막에 도달해서 시신경 세포를 자극하면, 눈은 이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서 뇌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빛은 진공 속에서 약 초속 30만 킬로미터로 직진한다. 진공에는 빛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물질이 없지만, 물 분자로 가득한 물 속을 지난다면 빛은 물 분자와 상호작용을 주고받는다. 300–700 nm 범위인 가시광선은 물 분자 속의 전자들을 흔들어줄 수 있다. 이렇게 흔들리는 전자들이 만들어내는 파동과 전자기파로서 빛의 파동이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빛은 원래 빛보다 느려진다. 진공 속에서 빛의 속도를 느려진 빛의 속도로 나눈 값이 바로 굴절률이고, 진공이 아닌 이상 전자가 있을 테니 (거의) 항상 1보다 크다. 


빛과 전자의 상호작용이 빛을 느리게 만드는 만큼, 전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굴절률도 높아질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대기는 질소, 산소 등의 기체 분자로 가득 차 있지만 액체나 고체에 비하면 분자들 사이의 거리가 매우 멀어서 텅텅 비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굴절률은 1보다 아주아주 조금 높은 수준이다. 물은 1.3쯤 된다. 음료수에 담긴 빨대는 똑바르더라도, 굴절률이 더 작은 대기에서 더 높은 음료수로 빛이 입사하면 대기와 음료수 사이의 계면에서 굴절되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빨대가 꺾여 보이는 일이 벌어진다. 


안경 렌즈의 굴절률은 1.5 정도에서 시작한다. 소위 말하는 압축 렌즈는 소재를 짓눌러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굴절률이 높은 소재를 쓰는 것이다. 수정체를 지난 빛이 망막보다 앞에서 초점이 맺히므로 멀리 있는 물체가 잘 보이지 않는 근시는 오목 렌즈를 써서 시력을 교정한다. 오목 렌즈는 가운데가 얇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두껍기 때문에 렌즈를 통과하는 빛은 가운데에서 멀어질수록 더 퍼지는 방향으로 굴절된다. 따라서 수정체를 통과한 후의 초점이 망막에 맺힐 만큼 뒤로 이동시킬 수 있다. 안경 없이 사물이 가장 또렷하게 보이는 거리를 미터 값으로 하여 100을 나누면 안경 처방전에 적혀 있는 디옵터가 되고,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근시의 마이너스 시력 값에 해당한다. 시력이 떨어질수록 멀리 있는 물체가 안 보이니 그만큼 디옵터 값도 커지고, 교정하기 위해 빛을 더 많이 굴절시켜야 하므로 렌즈가 두꺼워진다. 이때 굴절률이 더 높은 소재를 사용하면 렌즈의 두께를 높이지 않고도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이중 압축 렌즈는 1.6 정도이고, 삼중 압축 렌즈는 1.67까지 올라간다. 요즘은 굴절률 1.74의 사중 압축 렌즈도 있다고 하는데 필자는 거기까지 가보지는 않았다. 유리 렌즈는 굴절률이 1.9인 것도 있다고 한다.

굴절률을 높이면 가볍게 만들 수 있으니 물론 좋지만, 렌즈가 만족해야 할 성질은 그밖에도 다양하다. 일단 잘 보여야 하니 투명도는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다. 선글라스용 렌즈가 아닌 이상 가시광선 영역대의 빛을 흡수하면 곤란하다. 빛을 흡수한다는 의미는 렌즈 속의 전자가 빛을 에너지로 받아들여서 원래 있던 에너지 준위에서 더 높은 준위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렌즈 소재의 화학 구조를 잘 설계해서 전자들이 차지하는 에너지 준위 사이의 간격이 가시광선에 해당하는 에너지와 맞지 않게끔 할 필요가 있다. 흡수 외에 산란도 문제가 된다. 소재가 균일하지 않아서 100 나노미터보다 큰 이물질이 군데군데 있거나 기포가 존재한다면 그 부분에서 빛이 산란되어 불투명하게 보인다. 고분자로 렌즈를 만든다면 가공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틀에 넣고 굳히는 것도 좋지만, 녹일 수 있는 고분자라면 렌즈 모양으로 찍어내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다. 그러나 뽑아내고 찍어내는 과정은 고분자에 힘을 가할 수밖에 없어서 사슬들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약 렌즈의 가운데와 끝 부분에 있는 사슬들이 서로 줄을 선 방향이 다르다면 그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은 번져 보이게 된다. 


어찌 보면 더욱 근원적인 딜레마는 색수차에 있다. 프리즘에 백색광을 통과시키면 무지개색으로 갈라진다. 파장이 짧은 파란색 빛은 빨간색 빛보다 에너지가 높아서 프리즘 속의 전자와 더 강하게 상호작용하고, 따라서 더 속도가 느려진다. 파장에 따라서 굴절률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보통 아베 수로 나타내고, 클수록 굴절률 차이가 적다. 무지개색으로 갈라지는 것 자체가 수정체를 지나면 색깔별로 초점이 따로 맺힌다는 의미이므로 아베 수가 작은 렌즈는 아무래도 선명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굴절률을 높이면서 아베 수도 같이 키우는 것은 빛을 많이 꺾으면서도 파장 사이에 차이는 만들지 말라는 것이니 참 어려운 일이다. 


제일 처음 발명된 플라스틱 렌즈 소재는 폴리카보네이트 계열의 CR-39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커버로 쓰이는 소재도 폴리카보네이트이지만 구성하는 단량체의 종류가 다르다. 폴리우레탄 계열도 많이 쓰이고 있는데, 원래 군사용 방탄 소재로 개발되었다 렌즈 소재로 상용화된 트라이벡스는 1.53의 굴절률과 45의 아베 수로 균형 잡힌 광학적 특성과 탁월한 기계적 물성에 더해 1.1 수준의 밀도로 인해 매우 가벼운 특징이 있어 아직도 많이 쓰인다. 이중, 삼중, 사중 압축렌즈들도 주로 폴리우레탄으로 만들어진다. 의자 쿠션에 들어가는 푹신한 폴리우레탄 폼도 폴리우레탄이고, 핸드폰 케이스로 쓰이는 적당히 말랑하면서도 매우 질긴 TPU 소재도 폴리우레탄인 것을 생각하면, 어떠한 단량체를 조합해서 고분자를 만드느냐에 따라 천양지차의 물성을 나타내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고굴절률 소재는 디스플레이, 카메라, 센서 등 응용 분야가 무척 넓다. 원자핵 하나당 전자가 하나 있는 수소와 전자가 16개 있는 황을 비교하면, 황을 많이 넣을수록 전자 밀도가 올라갈 테니 굴절률이 올라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정확히는 움직이기 쉬워서 빛과 잘 상호작용하는 전자가 많으면서도 빛에 투명하게끔 화학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황의 경우 고분자에 넣으면 흔히 노란색 혹은 빨간색을 나타내는 것이 문제인데, 두드러지는 색깔 없이 고분자에 도입할 수 있다면 가시광선용 고굴절률 고분자 소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다루는 빛이 적외선이라면 우리가 보기에 색깔이 있어도 원하는 적외선 파장대에서만 투명하면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모두가 고통받던 시절에 공공 건물 입구에서 사람의 체온을 체크하던 적외선 카메라의 렌즈는 주황색 또는 어두운 색을 띤다. 지금은 주로 무기 소재로 만들지만 고분자로 대체할 수 있다면 이 또한 큰 의미가 있다. 

라이다 등과 같이 자동차에 들어가는 센서용 렌즈들은 온도가 변해도 굴절률이 변하지 않아야 여름에도 겨울에도 기대하는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고분자의 약점 중 하나가 온도가 올라가면 부피가 늘어나는 정도가 유리보다 높은 것인데, 이렇게 사슬 사이에 빈 공간이 늘어나면 굴절률은 자연히 떨어지기 때문에 렌즈로 응용하는 데 문제가 된다. 어떻게 하면 굴절률이 변하지 않는 플라스틱 렌즈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도 큰 관심거리다. 안경 렌즈와는 거리가 있지만, 음의 굴절률을 보이는 특별한 구조로 만들어진 소재도 있다. 소위 말하는 투명 망토를 만들 수 있다는 메타물질이 바로 이것이다. 

눈에 넣는 콘택트 렌즈도 안경 렌즈와 마찬가지로 유리에서 고분자로 점점 바뀌어 왔다. 제일 처음 상용화된 소재는 흔히 아크릴이라 불리는 폴리(메틸 메타크릴레이트)(PMMA)로, 보통 하드 렌즈 하면 딱딱한 플라스틱인 PMMA로 만들어진 렌즈를 가리킨다(안경 렌즈로는 오히려 최근에 PMMA로 만들어진 제품들이 나오고 있는 추세다). 요즈음은 말랑말랑한 소프트 렌즈를 주로 쓰다 보니 하드 렌즈를 쓰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드물어 보인다. 소프트 렌즈는 하이드로젤로 만들어진다. 헤어 제품용 “젤”이나 “젤리”와 같이 젤(gel)은 액체를 많이 머금고 있어서 말랑한 고체를 이르는 말이고, “하이드로젤”은 물로 만들어진 젤을 가리키는 단어다. 기저귀에 쓰이는 고분자인 초흡습성 수지도 물을 흡수하면 하이드로젤이 되는데, 고분자 무게 대비 수백 배의 물을 붙들고도 버틸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한다. 물을 좋아하는 고분자 사슬들이 서로 연결된 그물상 구조로 되어 있어서, 물을 흡수하면 크게 팽창하지만 그물이 끊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물을 잘 가둬놓을 수 있는 원리다. 소프트 렌즈도 고분자가 물을 좋아하는 정도와 그물의 눈 크기 등을 조절해서 물을 적당히 머금을 수 있도록 만든다. 아무래도 말랑한 데다 물이 대부분이다 보니까, 각막 표면에 렌즈를 덮었을 때 마찰과 이물감이 덜하고 단백질이 렌즈 표면에 달라붙는 일도 적다. 


그냥 하이드로젤로 만들어진 렌즈는 거의 모두 일회용이며 잘 때는 빼고 자야 한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물 때문이다. 각막은 빛을 통과시켜야 하므로 혈관이 없고 공기 중에서 산소를 직접 전달받는데, 물은 산소 투과도가 충분치 못해서 하이드로젤을 각막 위에 덮어 놓으면 각막 세포에 산소가 부족해진다. 착용할 때도 그런데 눈꺼풀까지 덮이면 산소가 들어갈 길이 없으니 각막에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실리콘 하이드로젤 렌즈이다. 우리말로는 반도체 기판에 쓰이는 실리콘(silicon)과 인공 보형물로 쓰이는 실리콘(silicone)이 똑같지만, 전자는 무기물이고 후자는 고분자이다. 전자를 이루는 실리콘 원자가 산소 원자와 결합해서 만들어진 고분자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하이드로젤 렌즈에 들어가는 실리콘은 물론 후자이다. 


실리콘은 보형물로 쓰일 만큼 인체에 해롭지 않고 매우 말랑한 성질의 고무이며, 고무의 특성상 사슬 사이의 빈 공간이 무척 많아서 기체를 잘 통과시키므로 산소 투과도가 필수적인 콘택트 렌즈에 잘 어울리는 소재다. 문제는 실리콘은 물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에 그냥은 하이드로젤과 섞일 수가 없다. 따라서 “상호침투성 고분자 네트워크”라는 기법을 써서 실리콘을 하이드로젤에 넣으면서도 가시광선에 투명하게 만들어낸다. 실리콘 고분자로 만들어진 그물이 있다고 하자. 그물을 팽창시킨 다음, 그 안에 물을 좋아하는 단량체를 넣고 단량체들을 서로 이어서 친수성 고분자 그물을 만들면 두 그물이 서로를 꿰고 있는 상태의 소재가 만들어진다.

실리콘과 친수성 고분자는 서로 싫어하니까 멀어지고 싶지만, 공유 결합을 끊지 않고는 물리적으로 상대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에 자기들끼리 뭉치지 못하고 그 상태를 유지한다. 이렇게 서로 섞이기 싫어하는 고분자들을 사슬 수준에서 섞어놓으면, 가시광선 입장에서는 개개의 사슬이 너무 작아 보여서 각 고분자를 구분하지 못하여 산란되지 않고 지나간다. 투명하고 물을 머금은 데다 산소 투과도까지 받쳐주다 보니 최근에는 한 달까지 계속 착용해도 괜찮다고 하는 제품들도 나오고 있다. 투명도와 산소 투과도는 주로 소재 자체의 특성에 크게 의존하지만 마찰이나 이물감은 각막 표면에 닿는 렌즈 표면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어떻게 하면 렌즈 표면을 코팅해서 착용감을 향상시키고 단백질 흡착을 줄일 수 있을지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이제 필자는 시력이 나빠질 일보다는 노안과 백내장이 걱정될 나이가 되었고 안경을 벗지 않고는 과자 봉지 뒤쪽에 쓰인 영양 성분과 원재료명을 읽을 수가 없다. 붓으로 큼지막하게 글씨를 쓰던 시절에도 노안 때문에 사람들이 고생했던 기록이 있는 걸 보면 꼭 스마트폰 때문에 노안이 오는 건 아닌 모양이다. 다행히도 최근 수정체(단백질로 만들어진 일종의 하이드로젤이다)의 탄력을 회복시켜서 노안을 개선하는 안약들이 개발되었다는 소식들이 있다. 삶의 질을 개선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