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AE QUARTERLY MAGAZINE
VOL.44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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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4 SPRING
김진효 변호사의 ESG
불확실성의 시대,
지속가능 경영의 새로운 기준
최근 뉴스 미디어를 접할 때마다 세계가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흔들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장기화 국면에 접어 들었고,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은 전 세계가 언제든 새로운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다. 주요 지역의 분쟁은 더 이상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며 단순한 외교 군사 문제를 넘어 에너지 가격, 공급망, 금융시장 전반을 통해 전 세계 기업의 경영 환경을 직접적으로 흔들고 있다.
가령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은 기업들에게 가장 즉각적인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인한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국제 유가와 가스 가격이 단기에 급등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유가 급등은 제조 원가와 물류비를 동시에 압박하게 되고, 이는 결국 제품 가격과 수익성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과거에는 이러한 변동을 일시적인 외부 변수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져서 구조적인 리스크로 인식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시화되면서 기업은 더 이상 안정적인 에너지 가격과 공급을 전제로 경영 전략을 세울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된 것이다.
기업의 경영 환경 변화는 ESG 경영의 중요성을 한층 더 부각시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ESG가 단순히 ‘착한 경영’의 개념을 넘어, 이제는 ‘리스크 관리’와 ‘생존 전략’의 핵심 도구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ESG가 오랫동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평판 관리의 영역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최근의 환경에서는 리스크 관리의 언어로 재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직면한 불확실성을 어떻게 흡수하고,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ESG는 보다 구조적인 답을 제시한다.
환경(environment) 영역에서는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노력이 비용 절감과 직결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에너지 효율 개선, 공정 혁신 등은 더 이상 장기적인 투자에만 머무르지 않고 단기적 경쟁력 확보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예를 들어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최근의 유가상승 국면에서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에너지 믹스를 다변화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해 온 기업은 상대적으로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이는 기업의 ESG 전략이 단순히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실제 재무 성과와 연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환경 전략은 비용이 아니라 리스크 헤지 수단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회(Social) 영역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긴장 속에서 체감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국제 분쟁은 공급망의 단절과 재편을 촉발하고 있으며, 이는 노동 환경과 지역사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정 국가에 생산을 집중해 온 기업들은 예상치 못한 공급 차질을 경험하고 있고, 이에 따라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지역 기반을 재설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협력업체와의 관계, 노동 조건, 지역사회와의 연계는 단순한 윤리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안정성 확보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
지배 구조(Governance)의 중요성도 한층 더 커지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업은 더 빠르고 정교한 의사결정을 요구받는다. 이를 위해서는 이사회와 경영진이 리스크를 구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한 의사결정 구조를 마련하는 것은 단기적인 대응을 넘어 기업의 장기적 신뢰와 직결된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책임 있는 의사결정은 위기 상황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유지하는 핵심 기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ESG는 기업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굳이 ESG라는 용어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각각의 세부 요소들은 기업들의 지속가능성과 발전을 위해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기업이 ESG를 단순한 보고나 평가 대응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급변하는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반대로 ESG를 경영 전략의 중심에 두고 체계적으로 실행하는 기업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과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거에는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예상치 못한 충격을 얼마나 잘 흡수하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최근의 전쟁이 초래한 지정학적 위기 상황 속에 놓은 기업들에게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생존을 위한 핵심인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이다. 국제 정세의 불안정은 기업에게 분명 부담이지만, 동시에 경영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고, 공급망을 재정비하며, 의사결정 체계를 강화하는 과정은 단기적으로는 어려움을 동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리하자면, 오늘날의 ESG는 더 이상 이상적인 가치 선언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기업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국제 정세가 흔들릴수록 기업은 더욱 명확한 기준과 체계를 필요로 하며, ESG는 그 기준을 제공하는 핵심 프레임워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 가능한 기업이란 변화가 없는 환경에서 잘 운영되는 조직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하고 방향을 잃지 않는 조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ESG라는 기준이 자리 잡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기업은 더욱 단단한 원칙에서 움직여야 한다. ESG는 그 원칙을 구체적인 실행으로 연결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약력
김진효 외국변호사는 다양한 산업계를 대상으로 K-ETS를 비롯한 국내외 온실가스 규제 대응, 탄소중립 및 ESG 활동, 신재생에너지 및 탄소시장 진출, 탄소국경조정제 대응 분야에서 활동해왔습니다. 한국탄소금융협회 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환경, 에너지 인프라, 기업법무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