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미식에세이

우리는 새해 첫 끼니로 떡국을 먹는다. 원래 ‘설날(음력 설, 1989년 부활)’을 위한 음식이지만 양력 1월 1일에도 떡국을 안 먹으면 뭔가 허전하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이유는 헤아릴 수 없지만 가래떡은 길게 뽑으면 장수를, 얇게 썰면 엽전을 닮아 돈을 상징해 새해 음식으로 즐겨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역의 기후와 농사가 만든 떡국의 얼굴

우리에게도 또렷한 지방색이 있어 떡국 또한 단조롭지 않다. 위도 기준 북부와 남부는 각각 만둣국과 떡국을, 중부 지방에서는 떡만둣국을 먹는다. 북부인 함경, 평안, 황해도는 기온이 낮고 강수량이 풍부하지 못해 벼 대신 밀농사가 강세였으니 쌀로 만든 떡보다 밀가루 반죽으로 빚어 소를 채운 만두를 먹었다. 꿩고기 국물을 쓰는 것도 북부지방 만둣국의 특징이다.


조랭이 떡국에 담긴 역사와 마음

역시 북부인 개성에서는 조랭이 떡국을 끓여 먹는다. 오뚜기나 누에고치처럼 둥글고 가운데가 잘록한 조랭이는 고려를 향한 신심을 반영한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떡을 비틀고 비벼서 조랭이를 만드는 것처럼 고려에 대한 충성심이 남아 있는 이들이 조선을 비틀어 버리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는 것이다. 떡국에 관한 가장 이른 기록은 조선 중기 이식(1584~1647)의 ‘택당집’에 남아 있으며, 18~19세기에 이미 ‘떡국을 먹으면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포도와 석류로 맞는 유럽의 새해

이제 세계로 눈을 돌려 새해 음식을 살펴보자. 스페인에서는 새해 첫 날을 알리는 자정의 종이 울리기 시작하면 포도를 한 알 씩 먹는다. 1909년, 전체 면적의 1/4이 포도밭인 알리칸테(Alicante) 지방에서 남는 포도를 처리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이후 포르투갈을 비롯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베네수엘라, 쿠바, 멕시코, 에콰도르, 페루 등으로 퍼져 풍습으로 자리를 잡았다. 종이 열두 번 울리는 것에 맞춰 열두 알을 먹는데 페루에서는 한 알 더, 그러니까 열세 번째 포도알까지 먹는다. 한편 그리스에서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석류알 또한 새해 음식으로 사랑받는다. 


염장 생선에 담긴 신앙과 생활의 지혜

한편 생선을 통으로 먹는 새해 풍습도 있다. 성스러운 휴일에 육식을 금하는 가톨릭교회의 규율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덴마크나 이탈리아 등에서는 대구를, 폴란드나 독일 등에서는 청어를 즐겨 먹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도 염장 덕분에 오랫동안 저장 및 운반이 가능해 지킬 수 있던 풍습이다. 독일에서는 잉어를 먹고 행운의 상징으로 비늘 몇 점을 지갑 속에 지니고 다닌다. 


지폐와 닮은 채소, 새해의 재물을 상징하다

돈과 닮아 새해에 즐겨 먹는 식재료도 있다. 케일, 근대, 양배추 등의 녹채는 색깔과 모양이 지폐와 닮아 사랑 받는다. 덴마크에서는 케일 스튜를 끓여 설탕과 계피가루를 뿌려 먹으며 독일에서는 김치와 매우 흡사한 양배추 발효 절임 사워크라우트를 즐긴다. 한편 미국 남부에서는 흑인의 소울푸드인 진녹색 잎채소 콜라드 그린으로 스튜를 끓여 먹는다. 훈제 돼지 족을 우린 국물에 더해 부드러워질 때까지 푹 끓인다.


동전을 닮은 콩, 행운을 부르다

채소가 지폐라면 콩은 동전을 의미한다. 렌틸콩이 대표적인데 이탈리아나 독일에서는 돼지고기나 소시지와 함께, 브라질에서는 수프를 끓이거나 쌀과 함께 새해의 첫 끼니로 먹는다. 미국 남부에서도 동부콩과 쌀로 끓여 콩밥과 비슷한 ‘호핑 존(Hopping John)’을 먹으며 새해를 맞이한다. 동부콩은 남북전쟁(1861~1865) 당시 식량 위기에서 발견돼 기아를 면한 덕분에 미국인들에게 행운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따뜻한 술과 달콤한 돼지의 상징

오스트리아에서는 성 실베스테르의 날인 신년 전야에 ‘글루바인(Glühwein)’을 마신다. 레드와인에 오렌지, 계피, 정향 등을 넣고 따뜻하게 끓여 마시는 글루바인은 유럽권에서 대표적인 겨울 및 새해 음료다. 그밖에도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애저(새끼 돼지)를 통으로 구워 먹으며, 돼지 모양으로 빚은 디저트인 ‘그릭슈바인(Glücksschwein, 행운의 돼지)’도 먹는다. 사실 돼지는 비단 유럽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새해 음식이다. 동양에서는 다산과 풍요를, 서양에서는 짧은 다리를 단단히 땅에 디디고 앞으로 나아가므로 전진을 상징해 새해 식탁에 오른다. 

중국의 새해, 발음과 상징으로 빚은 식탁

중국의 경우 음력 1월 1일이 춘절로 최대의 명절인데, 그에 걸맞게 지금까지 살펴본 의미가 깃든 음식들을 두루 먹는다. 그 시작은 ‘자오쯔(만두)’로, 교체(交替)와 발음이 비슷해 새해의 시작을 알리며 둥근 모양이 재물을 상징하니 동전을 넣어 행운을 기원하기도 한다. 새해 전날 밤 11시부터 새해 1시에 걸쳐 먹는다. 

떡인 녠가요는 ‘해마다 높이 오른다’는 뜻의 ‘년년고(年年高)’와 발음이 비슷해 새해의 번영을 기원하며, 생선(魯, 위)는 ‘남다’라는 뜻의 ‘余’와 발음이 같아 '年年有余(해마다 풍요롭다)'를 기원하며, 보통 찜 요리로 먹는다. 그밖에도 길게 뽑아 만든 국수로 장수를 기원하는 ‘장수국수(창수미엔)’, 가족의 화합과 단결을 의미하는 찹쌀경단인 탕위안 등도 즐긴다. 


일본의 새해, 의미를 차곡차곡 담다

일본의 새해 음식도 다양하다. 오세치 요리는 새해 연휴 동안 먹는 전통 음식으로 미리 준비해 추바코라는 찬합에 담아 차갑게 먹는다. 새해 명절인 요쇼가츠 기간(1월 1일~3일) 동안 주방 신에게 감사하며 부엌일을 쉰다는 의미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새우(장수), 검은콩(건강), 청어알(카즈노코, 자손 번창) 등 각 재료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오조니는 모찌로 끓이는 일본식 떡국인데 지역마다 국물을 된장, 간장 등으로 다르게 내며 떡의 모양도 제각기 다 다르다. 

새해 전야에 먹는 토시코시소바는 메밀로 만들어 쉽게 끊어지므로 액운을 끊는 한편 가늘고 긴 면처럼 장수하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밖에도 삶은 밤을 설탕과 함께 으깨 역시 밤 모양을 잡아 만드는 화과자 쿠리킨톤(栗きんとん)이나 표면이 일본풍 분홍색인 어묵 가마보코(かまぼこ) 또한 전통 새해 음식으로 가족의 건강과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약력

이용재 음식 평론가 겸 번역가. 한양대학교와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건축 및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고, 애틀랜타의 건축 회사 tbs 디자인에서 일했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저자로서 ‘맛있는 소설’,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미식대담’, ‘조리 도구의 세계’, ‘식탁에서 듣는 음악’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실버 스푼’, ‘뉴욕의 맛 모모푸쿠’, ‘인생의 맛 모모푸쿠’,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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