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를 원하는 형상대로 가공하는 방법은 재료에 따라 다양하다. 돌이라면 정으로 쪼고 깎아내어 조각상을 만들 것이고, 도자기라면 진흙을 뭉쳐 형상을 빚은 다음 구울 것이다. 금속이라면 높은 온도에서 액체로 만든 다음 틀에 부어 굳힐 수 있다. 물론 덩치가 커질수록 한번에 모양을 찍어내기 어려워지므로, 겉을 살짝 녹여 붙이는 용접이나 볼트와 너트를 이용해 기계적으로 체결하는 방식으로 부품들을 붙여 자동차를 만들고 배를 만들고 에펠탑을 만든다. 문제는 다른 종류의 재료를 결합하여 만들고 싶을 때다. 예를 들어 중동에 고층 빌딩을 짓고 유리 창문을 만든다고 하자. 만약 유리에 구멍을 뚫어 볼트와 너트로 체결한다고 하면, 유리의 열팽창 계수와 금속의 열팽창 계수 사이의 차이 때문에 햇빛을 받아 뜨거워졌다 밤이 되면 식는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유리창에 스트레스가 쌓여 결국 깨질 수 있는 문제가 생긴다. 접착제는 이런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고분자 소재다. 물론 같은 종류의 소재를 붙이는 데도 접착제는 아주 유용하게 작동한다. 몇 장 안 되는 종이는 스테이플러로 묶지만 입사원서에 사진을 붙일 때나 책을 만들 때는 풀을 바르는 것처럼 말이다. 우주선에서 벌어졌던 응급 상황을 해결했던 덕테이프처럼 접착제는 지구상뿐만 아니라 우주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소재다.
우리는 다 뭉뚱그려 접착제라 흔히 얘기하지만, 업계 종사자들은 접착과 점착을 구별한다. 접착제는 액체 상태에서 한쪽 재료 표면에 바른 다음 반대쪽 재료로 덮으면 점점 고체 고분자로 변해서 양쪽 표면을 잡은 채로 굳는 방식을 일컫는다. 시중에 순간접착제로 팔리는 유형이 대표적이다. 반면 점착제는 말랑말랑한 고분자를 써서 누르면 표면에 달라붙는 원리를 이용한다. 스카치 테이프에 코팅되어 있는 끈적한 물질이 바로 점착제이다. 액체여서 흐를 수 있든 말랑한 고분자여서 변형될 수 있든 표면과 최대한 많이 맞닿을 수 있는 성질이 있어야 하고, 특히 후자의 경우에는 끈적거리는 성질이 있어서 표면에서 잘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즉 표면과 점착제 사이에 서로 당기는 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분자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
우리가 보는 소금은 보통 고체이고 물은 액체이다. 소금은 + 전하를 띠고 있는 소듐 이온과 – 전하를 띠고 있는 염소 이온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대 전하를 띠고 있는 이온들이 서로 잡아당기는 힘은 화학에서 다루는 원자/분자/이온들 사이의 힘 중에서 아주 강한 편에 속해서, 소듐 이온과 염소 이온을 서로 떼놓기는 어렵다. 그에 비해서 중성인 물 분자들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서로를 끌어당기므로 상온에서 서로 위치를 바꾸면서 움직일 수 있는 액체 상태로 존재하고, 끓여서 온도를 높이면 분자들 사이의 거리가 크게 멀어진 수증기 상태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물 분자 사이의 힘도 분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센 축이다. 매니큐어 지울 때 쓰는 아세톤 분자는 물 분자보다 커다랗지만 분자간 인력은 많이 약해서, 물보다 끓는 점이 낮고 잘 날아가서 특유의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있다.
끌어당기는 힘이 가장 약한 분자들은 헥산처럼 보통 탄소와 수소만으로 이루어져서 비극성인 화합물이다. 힘의 세기가 많이 차이나는 분자들은 서로 잘 섞이지도 않는다. 물 분자 입장에서 잘 맞는 파트너인 물 분자를 제쳐 두고 떨어지는 헥산 분자를 만날 이유가 없는 까닭이다. 공기 중에서 물방울이 최대한 동그란 모양을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도 사실 같다. 물 분자들끼리 최대한 손을 잡고 공기 중의 질소나 산소 분자와는 거리를 두려고 하면, 단위 부피당 표면적이 가장 작은 구형을 취하는 것이 에너지 관점에서 안정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점착제를 붙이는 표면도 재료 내부에 비해서 자기들끼리 결합하는 정도가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높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붙이고자 하는 표면과 잘 어울리도록 점착제를 설계하여 쓰는 것이 관건이 된다.
접착제의 설계 원리
점착제를 만들려면 분자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들의 균형을 잘 맞춰주어야 한다.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충분히 말랑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딱딱한 고분자는 보통 결정성이 있거나, 사슬이 뻣뻣하거나, 사슬끼리 잡아당기는 힘이 강한 경우가 많다. 즉 말랑하게 만들려면 유연한 사슬들이 서로를 세게 잡지 않고 적당히 간격을 두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표면에 대고 눌렀을 때 퍼질 수가 없어서 접촉하는 면적 자체가 확보될 수 없다. 하지만 끈적이는 성질을 나타내려면 잡아당기는 힘도 어느 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말랑한 성질을 나타내는 단량체 95% 정도와 힘을 담당하는 단량체 5% 미만을 섞어서 공중합체를 만드는 것이 점착제를 설계하는 하나의 표준이 된다. 종류에 따라서는 말랑한 주재에 끈적이는 부재를 섞어서 점착제를 만들기도 한다.
스카치 테이프로 종이를 붙이는 상황을 상상하자. 셀룰로오스로 이루어진 종이는 쉽게 물에 젖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물을 좋아하고, 테이프에 발라진 점착제도 잘 잡아당길 수 있다. 종이에 테이프를 대고 누르면 셀룰로오스 섬유 사이 빈 공간에 점착제가 밀려들어가면서 다시 떼려고 하면 종이 표면 일부가 테이프로 따라올 만큼 단단히 종이를 붙들게 된다. 이번에는 폴리에틸렌 비닐 랩에 스카치 테이프를 붙이는 상황을 상상하자. 물을 싫어하는 폴리에틸렌 표면은 점착제도 미끄러질 뿐 잘 붙지 못해서, 떼어내면 점착제가 남지 않고 깔끔한 폴리에틸렌 표면이 돌아온다. 그렇다고 힘을 담당하는 단량체의 비율을 줄여서 극성을 낮추고 표면에 보다 잘 퍼질 수 있게 하는 것도 해결책이 아닌 것이, 표면을 잡아당기는 힘 자체가 줄어드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물을 싫어하는 표면에는 실리콘처럼 역시 물을 싫어하는 고분자가 주재료로 들어간 접착제가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스카치 테이프와 종이처럼, 점착제가 잘 붙었다면 떼어냈을 때 표면에 점착제가 남거나 심지어 표면이 뜯겨나와야 한다. 그러나 튼튼하게 붙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점착제에 요구되는 성질이 다르다. 포스트잇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약하게 붙는 점착제 마이크로스피어들을 종이에 붙여놓은 것이다. 점착제가 고르게 코팅되어 있는 테이프에 반해서 포스트잇 표면에는 수십 마이크로미터 정도의 공들이 듬성듬성 붙어 있다 보니, 종이에 대고 누르면 그 중 표면에 닿는 일부만 접촉해서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약한 힘으로도 쉽게 뗄 수 있고 반복해서 붙일 수 있는 신기한 성질이 나타난다. 대신 계속 쓰다가 먼지가 공 표면에 들러붙어서 더 이상 점착력을 낼 수 있는 공이 남지 않으면 버릴 때가 된 것이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점착제는 나날이 더욱 많이 쓰이고 있다. 핸드폰이든 자동차든 새로 사면 운송 및 판매 과정에서 표면이 손상되지 않도록 붙여 놓은 보호 필름이 구석구석 붙어 있고 물론 점착제가 발라져 있다. 필자는 받은 날 모든 보호 필름을 떼는 성격이다. 필름을 떼고 나서 점착제가 남은 끈적이는 표면을 원하는 사람은 필자 외에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테이프처럼 한 면에 코팅되어서 나오는 것이 흔한 점착제와 달리, 접착제는 액체 상태에서 일을 시작한다. 풀처럼 용매에 고분자를 녹여서 바른 다음에 용매가 날아가서 고체로 변화하는 방식도 있고, 액체 단량체들이 서로 반응해서 고체 고분자로 변화하는 방식도 있다. 앞서 언급했던 순간 접착제는 수분과 반응해서 매우 빠르게 반응이 시작되는데, 피부 표면의 물기 정도와도 반응하기 때문에 손에 닿으면 빠르게 굳어버린다. 두 종류의 액체 단량체가 주사기에 따로 들어있고 피스톤은 서로 붙어있는 에폭시나 우레탄 접착제도 있다. 이 경우에는 주사기에서 단량체들이 밀려나와 섞이는 시점에서 반응이 시작되어 견고한 고분자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접착제는 원칙적으로 다시 쓰는 상황을 가정하지 않으며, 그만큼 단단하게 붙는 것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단단하게 붙여 놓았다가 접합면을 분리할 일이 생기면 깔끔하게 떨어질 수 있도록 접착제를 만드는 연구도 있다. 예를 들어 온도를 높여서 고분자 네트워크를 더 조밀하게 만들면 접착제 층이 수축하면서 표면에서 쉽게 떨어져 나오는 식이다. 접착제에 분해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도 있다. 종이를 재활용하는 공정에서 폐종이를 잘게 써는 과정에서 봉투 등에 발라져 있는 풀이 세단기를 망가뜨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풀 자체가 그 전에 분해되게 만들려는 것이다. 앞선 이야기에서 다루었던 폴리페놀계 접착제들은 자연에서 유래된 소재를 쓰므로 분해성 면에서 강점이 있다. 짧게 쓰이고 금방 버려지는 편의점 가격표 등에 들어가는 점착제에도 생분해성을 도입해서 보다 환경친화적으로 만들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어떻게 표면을 잡을까
건축, 자동차, 선박, 항공처럼 접착면이 떨어지면 안전에 문제가 생기는 응용 분야에 접착제를 쓰려면, 접착제 층 자체가 외력에 충분히 버틸 수 있을 만큼 튼튼해야 함은 물론이고 접착제와 표면이 정말 단단하게 접합되어야 한다. 이쪽에 쓰이는 접착제들은 구조용 접착제라 불리는데, 볼트/너트 체결 방식에 비해 열팽창이나 부식 문제가 없고 무게를 줄일 수 있어서 운송수단에서는 연비에 이점이 생긴다. 특히 금속 부품 일부를 플라스틱으로 대체하여 경량화하는 경우 금속과 플라스틱을 용접 없이 서로 붙여야 하는데, 그렇다고 볼트를 박기 위해 플라스틱에 구멍을 뚫으면 그쪽으로 피로가 집중되면서 재료가 오래 견디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금속과 플라스틱이라는 매우 성질이 다른 두 재료 표면에 다 잘 붙는 접착제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표면을 일부로 거칠게 만들어서 접착제가 깊이 스며들게끔 하는 물리적 접근을 통해 접착력을 높일 수 있다. 닻을 내리는 것과 유사하다 하여 “앵커링”이라 불리는 이 방식은 깊이 파인 골짜기 안에 채워진 접착제가 떨어져 나오기 위해서는 평평한 표면 대비 훨씬 큰 접촉 면적 때문에 더욱 단단히 결합되는 원리를 이용한다.
화학 입장에서는 표면과 접착제 사이에 잡아당기는 힘을 어떻게 더 세게 만들지 고민한다. 앞서 이야기 했던 분자들 사이의 힘보다 더 강력한 결합은 원자와 원자가 전자를 나눠 쓰는 공유 결합이다. 만약 표면과 접착제 사이에 공유 결합을 만들 수 있다면 분자간 상호작용에 의존하는 일반 접착제보다 훨씬 더 강한 접착력을 구현하면서도 접착제 층의 두께를 극단적으로 줄여 경량화에도 이바지하는 가능성이 생겨난다. “분자접합”이라고 불리는 이 개념이 최근 대두된 이래 몇 가지 제품들이 주로 일본에서 상용화되고 있는 중이다. 금속과 고분자를 분자접합한 한 사례를 보면, 먼저 금속 표면을 개질해서 단량체와 반응할 수 있는 기능기를 만들어 놓는다. 그 다음 액체 단량체를 붓고 반응을 시작하면 고분자가 만들어지는 와중에 자연스레 금속 표면과도 공유 결합이 만들어져서 매우 단단히 접합된 이종소재가 탄생한다. 그럼 이미 만들어져 있는 플라스틱은 어떻게 금속과 분자접합을 할 수 있을지, 필자의 연구실에서도 한창 연구하는 중이다.
구조 재료인 금속이나 플라스틱에 비해 접착제가 쓰이는 양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다. 그러나 접착제 없이는 재료들을 붙이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만큼 접착제는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이자, 서로 상충하는 요구 조건들 사이에서 조화를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고분자 소재이며, 우리나라가 소재 강국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스페셜티 소재로 생각한다. 필자가 3M을 방문해서 처음에 소개했던 고층 빌딩용 접착제를 직접 보고 받았던 충격만큼, 언젠가는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소재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