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AE QUARTERLY MAGAZINE

VOL.42 AUTUMN


서명은 교수의 과학이야기


모래사장에 손으로 글씨를 쓰면 손가락이 지나가 패인 곳과 그렇지 않은 곳 사이에 높이 차이가 생긴다. 우리는 눈으로 그 차이를 인지하여 사랑의 언약이 담긴 이름들을 읽어낸다. 파도가 밀려와 모래를 흩어놓으면 글씨는 점점 희미해지며 사라지고 우리 머리 속에 기억으로만 남는다. 

반면 보다 긴 시간 동안 버텨낼 수 있는 매질에 남긴 자취는 아직도 생생하다. 울주에 있는 암각화가 그렇다. 물론 영겁의 세월 앞에서는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바위 표면에 파인 요철은 수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형상을 읽어낼 수 있다. 먹물을 바위에 바르고 종이를 붙였다가 떼어내면 요철의 형상과 반대 모습이 종이로 옮겨온다. 패턴이 전사되고, 정보가 전달된다. 지식의 폭발적 전파를 촉발한 인쇄술의 요체다. 

반질반질한 석회석 표면에 기름진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다음 끈적한(고분자가 들어가 있는) 약산성 수용액을 바르면 물감으로 덮인 부분은 물을 밀어내기 때문에 반응하지 않는 반면, 노출된 표면은 더욱 친수성으로 변하면서 빈틈없이 조밀해진다. 인쇄할 때는 물을 묻혀 놓고 기름진 잉크를 바른다. 잉크는 스며들기 친수성 표면을 피해서 원래 그림이 그려진 부분에만 젖어들고, 그림은 그 모습 그대로 종이에 복사된다. “리소그래피(lithography)”라 불리는 기법이며, 우리가 쓰는 반도체에 요철을 만드는 핵심 공정이다.

반도체 공정용 리소그래피의 핵심은 빛과 고분자이다. 고분자 소재는 빛을 오래 받으면 조금씩 라디칼을 만들면서 화학 결합들이 서서히 끊어지거나 새로운 결합을 만드는 일들이 생긴다. 어떻게 하면 빛에 대한 내후성을 향상할 수 있을지가 소재 산업에서 중요한 화두인 반면, 리소그래피에는 빛을 받아 빠르게 반응하는 고분자를 사용한다. 이름부터 “포토레지스트(photoresist)”라 부르며, 따라서 이를 사용하는 공정은 “포토리소그래피”가 된다. 

반도체와 포토리소그래피

반도체 칩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 보자. 예컨대 트랜지스터의 한 갈래인 전계효과 트랜지스터(field effect transistor, FET)는 반도체 층을 사이에 두고 위에는 절연체 층 위에 게이트 전극이 올라가고, 양 옆에는 소스와 드레인 전극이 배치된 구조로 되어 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전극은 전기가 잘 통하고 절연체 층은 전기가 통하지 않지만, 반도체는 이름만큼이나 전기가 통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실리콘(Si)에 소량의 인 또는 붕소를 섞어서 본래 전류가 흐르지 않다가 온도가 어느 이상으로 올라가면 전류가 흐르는 반도체를 만들 수 있고, 섞는 도핑 정도에 따라 전류가 흐르는 정도도 조절할 수 있다. FET에서는 게이트 전극에 얼마나 큰 전압을 걸어주느냐에 따라 반도체를 통해 소스에서 드레인으로 전류가 흐를지를 결정한다. 트랜지스터에 축전기(capacitor)를 붙여서 전류가 흐른 경우 전자를 저장해 둘 수 있도록 조합하면 정보를 기억할 수 있게 된다. DRAM의 기본 메모리 셀이 바로 이것이다. 수없이 많은 셀들이 기판 위에 빽빽히 배열되고 서로 도선으로 연결되어 집적회로를 만들고, 전체가 에폭시와 같은 소재로 패키징되면 드디어 우리가 보는 칩이 된다. 

도선을 차치하고 생각해도 FET 하나를 만드는 데 3개의 전극과 절연체+반도체 층의 위치를 정확히 정해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모든 구성요소를 작게 만들수록 단위면적당 더 많은 소자를 올려 집적도를 높일 수 있고 같은 크기에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램을 만들 수 있다. 사람의 손으로 하나씩 그어 만들기에는 크기를 줄이는 데 금방 한계가 오고, 실수 없이 설계도 그대로 대량 생산하기도 어렵다. 원본을 베껴쓰는 필사가 아니라 판 그대로 찍어내는 인쇄처럼, 설계도를 따라 반도체 기판의 요철을 몇 번이고 만들어낼 수 있는 포토리소그래피가 개발되면서 집적회로를 비로서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포토마스크는 포토리소그래피 공정의 원판에 해당한다. 원하는 부분만 빛이 지나가고 나머지 부분은 차단할 수 있도록 투명한 판에 아주 작은 금속 패턴이 새겨져 있다. 포토마스크를 통해서 빛을 쪼여 패턴을 전사하고 싶은 곳은 반도체 기판이다. 빛이 닿은 곳과 닿지 않은 곳의 차이를 화학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포토레지스트를 기판 위에 아주 얇게 깔고 나서 빛을 쪼인다. 예전에는 빛을 받으면 가교 반응이 일어나 더 이상 녹지 않게 되는 고분자들을 주로 포토레지스트로 사용했다. 용매로 씻어내면 가교된 부분만 녹지 않고 나머지 부분은 녹아 나가서 포토마스크의 패턴이 뒤집힌 모습으로 기판 위에 포토레지스트 패턴이 만들어진다. 플라즈마 내에서 만들어진 이온과 리디칼이 기판에 충돌하면서 기판을 깎아내는 에칭 과정에서 포토레지스트가 남아 있는 부분은 반응하지 않으면서 남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포토마스크에서 기원한 포토레지스트 패턴이 반도체 기판에 전사되어 요철을 만들게 된다. “레지스트”라는 이름은 바로 에칭에 저항하는 특성을 가리킨다.  

빛을 증폭하기

화학 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보통 에너지가 필요하다. 활성화 에너지 장벽이라 불리는 임계값보다 에너지를 높여서 분자들이 반응성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만약 촉매가 있다면 촉매가 관여하는 가운데 활성화 에너지 장벽이 보다 낮은 경로를 통해 반응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반응이 끝나면 촉매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와서 다음 분자의 반응을 도와주기 때문에 반응을 훨씬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분자의 에너지를 높이기 위해서 가장 흔히 쓰는 방법은 끓이는 것이다. 열에너지는 원하는 부분에만 전달하고 다른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쉽지 않고 또 가열했다 식히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빛을 에너지원으로 쓰면 포토마스크를 통해서 반응이 어디에서 일어날지 정해줄 수 있고 훨씬 빨리 켜고 끌 수 있다. 대신 아무 빛을 써서 반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분자 안에서 반응에 참여할 전자가 흡수해 에너지가 높아지기에 적절한 파장의 빛을 쪼여주어야 한다(거꾸로 생각하면 원하는 반응만 일어나게끔 파장을 골라 쓸 수 있는 가능성도 생긴다). 광자 하나를 흡수한 분자가 한번 반응한다면 효율은 100%이겠지만, 효율은 그보다 많이 낮은 경우가 보통이다. 빛을 받아 반응해서 가교되는 포토레지스트의 효율도 마찬가지다. 포토마스크의 패턴이 미세해질수록 2차원인 포토레지스트 표면에서 형성될 선의 너비가 좁아지기 때문에, 개개의 선을 만드는 데 쓸 수 있는 광자의 개수도 줄어들고 선 가장자리에 정확히 충돌해 줄 광자는 확률상 더 적을 테니까 매끈한 선을 얻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는 광자가 포토레지스트 표면부터 바닥까지 전부 반응하기에 충분치 못해서 포토레지스트 층의 두께를 줄여 맞추어야 한다. 포토레지스트 패턴이 거칠어지고 얇아지면 반도체 기판에 최종적으로 전사되는 요철도 예쁘게 나올 수가 없다. 웨이퍼 한 판을 최대한 크게 만들어서 생산 효율을 높이려는 마당에 리소그래피 공정에서 결함이 자꾸 발생해 수율이 받쳐주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따라서 광효율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접근 방식을 조금 바꿔서, 포토레지스트 내에 빛을 받으면 반응하는 다른 화학종이 있다고 하자. 이 화학종도 광효율이 100%는 아니겠지만 반응의 결과로 반응성 높은 화학종, 예컨대 양성자를 만들어 낸다고 하자. 만약 이 양성자가 포토레지스트 반응의 촉매로 작용한다면, 빛을 받아 만들어진 양성자는 광자의 개수보다 분명 작겠지만 일으키는 반응의 개수는 광자보다 훨씬 많아질 수 있는 잠재력이 생긴다. 광산 생성제(photoacid generator)를 기반으로 1980년대 등장한 이 “화학적 증폭” 개념은 포토레지스트의 혁명을 불러왔다. 대표적인 전략으로 원래는 소수성이 강해서 물에 녹지 않는 고분자에 양성자가 있으면 쉽게 끊어지는 화학 결합을 측쇄에 연결해 둔다. 끊어진 다음 남는 고분자는 친수성으로 바뀌고 나머지는 기체로 변해 날아가고 양성자가 다시 생성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면, 반응을 아주 높은 효율로 일으킬 수 있다. 부산물이 기체가 되면 나중에 따로 씻어낼 필요가 없어서 간편할 뿐만 아니라 반응계에서 계속 제거된다는 것 자체가 반응이 쉽게 진행되는 방향으로 평형을 기울여 준다. 반응이 끝나고 물로 씻어주면 빛을 받아 양성자가 만들어진 부분만 친수성으로 바뀌어 물에 녹아나가므로 정교한 포토레지스트 패턴을 만들 수 있다. 지금 쓰이는 포토레지스트들은 화학적 증폭 원리에 기반한 것들이 많다.

빛의 파장과 집적도

무어의 법칙이나 황의 법칙은 집적회로에 포함된 소자의 개수가 1-2년마다 몇 배씩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자연을 관찰한 결과로부터 도출한 물리적 법칙이 아니라 그동안 기술이 발전해 온 경향을 살펴보고 제안한 가설이기 때문에 이 예측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뚜렷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며,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성립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 더욱 작고 더욱 강력한 반도체 칩을 만들어 시장을 선점 혹은 독점하고 후발 주자들이 따라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 동안 높은 이윤을 확보하는 전략을 택한다면, 가장 명약관화한 수단은 집적도를 높이는 것이므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 기술이 급속하게 진보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처음에 포토리소그래피에서는 “g-line”이라 불리는 수은 램프에서 나오는 435nm 파장을 사용했다. 보통 파장이 정해지면 달성할 수 있는 패턴의 가장 작은 선폭(혹은 선 사이 간격)은 파장에 비례한다. 지난 60년간 파장은 435nm에서 가시광선 영역대의 끝자락에 위치하는 파장인 365nm를 거쳐 자외선 영역대에 진입했으며, 248nm가 한동안 쓰이다가 지금은 심자외선(deep UV)이라 불리는 193nm까지 내려왔다. 광원이 바뀌면 광학 설계부터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설비 투자가 이루어진 결과다. 

장비만 바꾼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파장이 바뀌면 원래는 빛을 흡수하지 않던 포토레지스트도 이제는 빛을 흡수하기도 하고, 양성자를 잘 내놓던 광산 생성제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일이 생긴다. 특히 포토레지스트가 반응은 하지 않고 빛만 흡수하면 화학적 차이에 따른 패턴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해당 파장에 충분히 투명한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 그러나 포토레지스트로 쓰기에 적합하도록 용매에 녹는 성질, 기판 위에 빈틈없이 잘 코팅되면서 흘러다니지 않고 적당히 튼튼한 박막을 만드는 성질, 반응 이후에 극성이 적절히 바뀌는 특성, 에칭 과정에서 충분히 버텨줄 수 있는 저항성 등을 모두 만족하면서도 파장에 대한 선택성을 구현하는 것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차세대 리소그래피용 광원으로 157nm 파장이 한동안 거론되었지만 결국 쓰이지 못한 걸 보면, 유기물에 가장 흔한 C-H나 C-C 결합도 157nm에서 충분히 투명하지 못한 탓에 경쟁력 있는 포토레지스트가 개발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다.  

결함을 잡아라

지금은 심자외선을 넘어 13nm 수준의 극자외선(EUV)이 차세대 광원으로 입지를 굳히는 분위기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시작된 기초연구가 국제정치가 얽힌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네덜란드의 ASML에서 꽃을 피운 것으로, 현재 ASML은 반도체 공정용 극자외선 장비의 생산을 독점하고 있다. 삼성전자, TSMC, 인텔 등을 비롯한 모든 반도체 회사들이 장비가 언제 납품될지 ASML의 눈치를 보는 사례나, 2019년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면서 3개 품목 중에 포토레지스트를 꼭 찍어 수출 규제를 시작했던 것을 보면 기술력의 우위가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간 경쟁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실감한다. 포토레지스트 쪽에서는 극자외선에서 쓸 수 있는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하는 것도 어렵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가는 선폭 대비 광자수가 부족해 가장자리가 거칠어지는 문제와 함께 광학 설계상 초점 심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보니 포토레지스트 패턴도 얇아지는 문제가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리소그래피가 사람이 그린 대로 패턴을 만드는 대표적 “탑-다운” 방식이라면 블록 공중합체처럼 분자에 내재된 화학적 성질에 따라 저절로 패턴을 만드는 “보톰-업” 방식이 199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까지 램처럼 반복적인 패턴이 필요한 분야에서 포토리소그래피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가 시들었던 적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블록 공중합체가 열역학적으로 주기적인 패턴을 만드려는 경향이 분명 있지만, 그 패턴 속에 결함이 일부 존재하면 엔트로피 측면에서 득을 보기 때문에 결함을 아예 없애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웨이퍼 전체를 통틀어 결함 하나 없기를 바라는 반도체 칩 공정에 쓰기에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관련 기업들은 해당 연구에서 속속 발을 뺐다. 

그런데 10년도 되지 않아 극자외선 포토리소그래피로 만들어진 패턴을 교정할 수 있는 기술로 사장된 줄 알았던 블록 공중합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즉 포토레지스트 패턴이 삐뚤삐뚤하고 원래는 끊어져야 하는 곳인데 이어져 있는 결함이 있고 하더라도, 그 위에 블록 공중합체 패턴을 잘 맞추어 만들어 주면 엉망인 아래쪽은 다 가리고 깔끔한 패턴을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포토레지스트 위에 잘 코팅되면서 에칭될 곳과 버텨줄 곳이 레지스트 패턴을 정확히 따라가 줄 그런 블록 공중합체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다. 강력한 경쟁자가 주인공과 다투고 스토리에서 이탈했다가 마지막에 돌아와서 힘을 합쳐 악역을 물리치고 끝을 내는 영화처럼, 리소그래피도 EUV라는 극한에 이르러 탑-다운과 보톰-업의 조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면 더욱 가슴 찡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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