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미식에세이

샐러드의 

세계

샐러드도 맛있을 수 있을까? 입맛이 떨어지는 본격적인 여름, 건강까지 생각하면 샐러드를 찾기 마련이다. 샐러드라면 익히지 않은 채소를 드레싱으로 버무려 차게 먹는 음식을 떠올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콩이나 곡류, 파스타, 감자 등을 주재료로 쓰면 맛있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샐러드를 만들 수 있다.

샐러드가 맛없는 건 샐러드 탓이 아니다

샐러드는 꼭 차갑게 먹어야 하는 음식이 아니다. 생채소라도 실온이거나 그보다 살짝 낮은 온도여야 맛있다. 냉장고에서 갓 꺼내 차가우면 음식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살짝 볶거나 드레싱을 따뜻하게 데워 끼얹거나, 독일식 감자 샐러드처럼 감자를 막 삶아 따뜻할 때 버무려 먹는 샐러드도 있다. 이처럼 샐러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므로, 샐러드를 하나의 틀에 집어넣을 이유가 없다. ‘샐러드란 무엇인가?’보다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나?’를 따지는 게 더 바람직하다. 서양 음식은 결국 ‘소스+재료’다. 소스는 액체 상태의 양념으로 점도가 높다는 공통점을 나눠가진다. 촉촉함과 부드러움을 더해 맛만큼이나 중요하다. 

소스가 샐러드를 위해 쓰일 때 드레싱이라고 일컫는데 둘의 역할은 원칙적으로 같다. 재료를 한데 아울러주는 동시에 촉촉함을 더하므로 지방이 필요하다. 지방은 멍석을 깔아 전체의 맛을 증폭 및 전달한다. 여기에 산이 상호보완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돕는다. 신맛으로 지방의 느끼함을 덜어주는 한편 입맛을 돋워주고 채소에 따라 다른 쌉쌀함의 균형을 맞춰준다. 따라서 ‘지방+산’인 드레싱 가운데 샐러드에 가장 흔하게 쓰는 게 ‘비니그렛’이다. 올리브기름이나 유채기름 등, 상온에서 액체 상태를 띠는 지방에 산을 더한다. 엑스트라버진 올리브기름이 대세지만 특유의 알싸한 향이 거슬릴 수도 있으니 얽매일 필요는 없다. 보다 중립적이면서 값도 싼 식용유(유채, 콩기름 등)도 좋다. 

산도 특정 제품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발효 식초는 기본이고 레몬 등 과일즙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산도 즉 신맛을 기준으로 고르는게 좋다. 요즘은 완제품 드레싱도 널렸지만 굳이 살 필요는 없다. 산과 기름의 기본 배합 비율(1:2~3)만 알면 누구라도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둘을 기본 비율에 맞춰 더하고 마늘과 소금, 후추만 더하면 끝이다. 

더군다나 드레싱 혹은 비니그렛은 만들기도 쉬워서 유리병 하나만 있으면 된다. 먹고 남은 과일잼 병 등에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새지 않도록 뚜껑을 꽉 덮은 뒤, 힘차게 흔들어 섞는다. 냉장고에 적어도 1주일은 두고 먹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기름과 산이 분리되므로 먹기 직전 다시 흔들어 섞어 주기만 하면 된다.

샐러드를 실패하게 만드는 건 늘 수분이다

비니그렛의 핵심은 유화인데 기름 알갱이를 잘게 부숴 물에 분산시키는 원리다. 원래 안 섞이는 두 액체가 잠시 하나가 되는 유화는 샐러드의 완성도와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같은 비율의 재료를 쓰더라도 유화를 통한 비니그렛과 기름과 식초를 따로 더해 버무린 샐러드는 다르다. 전자는 기름의 점성을 빌어 산을 비롯 기타 맛을 더하는 양념이 재료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돕는다. 후자는 먼저 생긴 기름막이 다른 재료가 어우러지지 못하도록 막는다. 

맛있는 샐러드의 첫 번째 조건은 치수(治水), 즉 수분의 통제 또는 조절이다. 채소의 물기가 넘쳐나면 유제품이나 올리브기름 등 지방 바탕의 드레싱과 섞여 간을 비롯한 맛의 큰 그림을 흐린다. 일단 헹군 다음 물기를 완전히 털어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이파리의 주름 사이사이에 맺힌 물방울은 손으로 털어도 박멸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도구의 힘을 빌어야 하는데 채소 탈수기가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두 겹으로 된 바구니에 채소를 담고 손잡이를 누르거나 당기면 안쪽의 바구니가 돌아가며 물기를 밀어낸다. 체처럼 구멍이나 틈이 나 있어, 빠진 물기는 바깥쪽 바구니에 고인다. 채소를 헹궈 탈수기에 돌린 다음 용기에 담아 하루쯤 냉장보관하면 보송보송하게 먹을 수 있다. 샐러드를 최대한 늦게 버무리는 것도 요령이다. 밥집에서 내주는 나물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는가?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이다. 채소 자체의 질이며 조리 솜씨도 영향을 미치지만 만든 시기 때문이다. 버무린지 오래되면 삼투압 현상이 벌어져 접시 바닥에 물기가 고이는데 채소에서 빠져나간 맛이다. 같은 이치로 접시 바닥에 물기가 남아 있는 샐러드는 불합격이다. 

손끝의 정성이 만드는 샐러드 한 그릇

맛있게 먹으려면 샐러드를 잘 버무리는 요령도 중요하다. 연약한 이파리가 멍들지 않도록 살살 버무려야 하니 씻기와 비슷하다. 넉넉하다 못해 크다 싶은 대접의 바닥에 드레싱을 깔고 그 위에 채소를 얹는다. 샐러드용 큰 숟가락과 포크도 있지만 ‘손 뒀다 뭐에 쓰게?’라는 말이 있듯 최고의 조리도구인 두 손이 가장 좋다. 공기를 쥔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뒤적이며 드레싱을 채소에 골고루 버무려 준다. 

샐러드도 단백질을 갖춰야 하나의 균형 잡힌 끼니로 완성될 수 있다. 대개 조리에 편하거나 저지방 고단백이라는 이유로 닭을 선호한다. 결국 계란이나 닭가슴살인데 둘 다 맛으로 많이 먹기 힘든 재료다. 특유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가능한 잘 조리할 필요가 있다. 둘 다 섬세한 온도조절이 관건인데 다행스럽게도 그리 까다롭지는 않다. 

먼저 계란부터 살펴보자. 대개 삶아서 많이 곁들이는데 계란이 생각보다도 훨씬 더 연약한 식재료임을 감안해야 한다. 오랫동안 끓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찬물에 계란을 담아 불에 올렸다가, 물이 끓으면 바로 내린다. 6분~6분 30초 뒤 찬물로 헹구면 흰자와 노른자 모두 부드럽게 익는다. 바로 찬물에 담가 온도를 낮춰줘야 노른자 가장자리가 녹색으로 변하지 않는다. 

닭가슴살도 마찬가지 요령으로 잘 삶을 수 있다. 냄비에 닭가슴살을 담고 물을 자작하게 붓는다. 중불에 올려 물이 섭씨 75~77도까지 올라가면 불에 내려 15~17분 그대로 둔다. 온도를 확인해 익힌 물과 마찬가지로 75도 정도면 안전하게 익은 것이다. 종이 행주로 물기를 걷어내고, 썰기 편하도록 30분 정도 냉장고에서 식힌다. 여느 육류와 마찬가지로 닭가슴살 또한 결의 반대 방향으로 썰어야 먹기 훨씬 편하다.



약력

이용재 음식 평론가 겸 번역가. 한양대학교와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건축 및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고, 애틀랜타의 건축 회사 tbs 디자인에서 일했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저자로서 ‘맛있는 소설’,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미식대담’, ‘조리 도구의 세계’, ‘식탁에서 듣는 음악’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실버 스푼’, ‘뉴욕의 맛 모모푸쿠’, ‘인생의 맛 모모푸쿠’,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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