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현의 마음을 살피는 기술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밤새 뒤척여 본 적, 있으신가요? 날카로운 뒷담화, 근거 없는 비난에 하루 종일 마음이 지옥 같았던 경험은 또 어땠나요. 애써 괜찮은 척 웃어 보지만, 이미 영혼에는 보이지 않는 생채기가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타인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며 살아가지만, 그 거울이 나를 왜곡해 비출 때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는 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분들이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간절히 바라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타인의 부정적인 말에 마음이 아픈 것은 결코 당신이 유별나게 약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반응이에요. 중요한 것은 상처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상처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독여 내면의 평화를 되찾는가에 있습니다. 여기서 타인의 언어폭력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어떤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닻을 안전하고, 온전하게 내리는 구체적인 항해술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당신의 존엄성이 타인이 던진 한두 마디에 좌우되지 않도록 함께 마음을 지키는 견고한 성을 쌓아봅시다.

우리는 왜 이토록 아픈 걸까?


타인의 말 한마디에 내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유, 그 뿌리를 알면 억울함이 조금은 가실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것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우리 DNA에 깊이 새겨진 ‘생존 본능’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래 무리 지어 사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먼 옛날, 무리에서의 고립은 곧 죽음을 의미했죠. 그래서 우리의 뇌는 지금도 타인의 비난이나 거절을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고 비상벨을 울립니다. 타인의 표정, 행동, 말에 가슴이 철렁하고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뇌의 필사적인 노력인 셈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비밀이 있습니다. 타인의 비난이 유독 아프게 파고드는 순간은, 그 말이 내 안의 작은 ‘의심’과 만났을 때입니다. ‘혹시 내가 정말 부족한 건 아닐까?’하고 스스로가 불안해하던 바로 그 지점을 타인이 콕 집어 말할 때, 그 말은 단순한 의견을 넘어 나에 대한 ‘객관적 팩트’처럼 둔갑해버립니다. 항상 자신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다면, 작은 비난에도 쉽게 무너져버리는 셈이죠.

폭풍의 한가운데서 나를 꺼내는 법: ‘감정의 객관화’


부정적인 말을 들었을 때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의식적으로 감정과 거리를 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는 감정을 억지로 누르거나 못 본 척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성난 파도에 맞서 싸우는 대신, 잠시 해변으로 나와 파도를 ‘관찰’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알아차리되, 감정 안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노력입니다. 그 첫 단계는 바로 ‘감정에 이름표 붙여주기(labeling)’입니다.

“아, 내가 지금 분노하고 있구나”, “모욕감을 느끼는 중이네”, “서러움이 밀려오는구나”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정확히 인식하는 순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간단한 행위만으로도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이성적인 부분이 활성화되어, 감정의 폭주를 멈추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감정과 나를 동일시하던 상태에서 벗어나 ‘내가 느끼는 감정’으로 객관화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감정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날아온 말을 분석대에 올려놓고 ‘사실’과 ‘해석’을 분리하는 작업입니다. “당신은 이기적이야”라는 말은 팩트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기대와 관점이 듬뿍 담긴 주관적 해석일 뿐입니다. 이때 스스로에게 탐정처럼 질문을 던져보세요. ‘이 말이 100% 진실인가?’, ‘혹시 저 사람의 기분이나 편견, 질투심이 섞인 말은 아닐까?’ 이렇게 비판적으로 말을 해부하는 과정은, 그 말이 가진 심리적 무게를 놀랄 만큼 가볍게 만들어 줍니다. ‘그의 생각’과 ‘진정한 나’ 사이에는 건강한 경계선이 필요합니다. 감정을 객관화할 때는 노트, 혹은 스마트폰 메모장에 생각을 적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완벽한 요새, ‘자기 확신’


요새의 주춧돌은 바로 ‘나만의 가치관’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요? 정직, 성장, 사랑, 책임감, 유머 등 나를 나답게 만드는 핵심 가치를 명확히 해보세요. 그리고 그 가치에 따라 살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타인의 인정 없이도 스스로 충만해지는 깊은 자존감을 경험합니다. 내 삶에 대한 만족감과 자신감은,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과 현재의 내 삶의 모습이 일치할 때 생겨납니다. 그럴 때 나의 삶은 나의 기준으로 살아내는 것이지, 타인의 잣대에 맞춰 재단되는 것이 아니라는 단단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요새를 더욱 튼튼하게 하려면, ‘나만의 보물 상자’를 채워야 합니다. 우리는 유독 부정적인 기억은 곱씹고 긍정적인 성과는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이겨내려면 의식적으로 나의 성공 경험, 강점, 내가 나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순간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수집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막막했던 일을 끝내 해냈던 기억,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넸던 순간, 스스로의 한계를 넘었던 작은 용기들을 보물처럼 모아두세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 보물 상자를 열어보십시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구체적인 증거들은, 막연한 긍정의 말보다 훨씬 강력한 치유제가 되어줄 것입니다. 자기 전 3가지 정도, 자신이 오늘 했던 일에 대해 감사하고 칭찬하는 기록이 도움이 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건강하게 나를 지키는 세련된 기술, ‘경계선 설정’


내면의 힘을 기르는 동시에 관계 속에서 나를 보호하는 세련된 기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합니다. 언제까지나 상처받고 치유하는 과정을 반복할 수는 없으니까요. 때로는 건강한 경계선을 설정하고, 부당한 공격에는 현명하게 대응함으로써 문제의 싹을 잘라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상습적인 공격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품위 있는 무시’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일삼는 사람들은 상대의 감정적 반응을 먹고 자랍니다. 당신이 상처받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일수록 그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며 만족감을 느끼죠. 반면, 당신이 그 말을 듣고도 미동 없이 평온하다면 그들은 마치 벽에 대고 소리치는 것처럼 허무해지고 머쓱해집니다. 이는 ‘당신의 말은 나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를 알려주는 가장 강력하고 우아한 메시지입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의 공격에는 ‘회색 돌’ 같은 무덤덤함이 가장 좋은 대비책입니다.

물론, 관계에 따라 반드시 말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때는 상대를 비난하는 대신 ‘나’를 주어로 삼아 이야기하는 ‘나-전달법’을 사용해 보세요. “당신은 왜 늘 그런 식으로 말해?”라고 쏘아붙이는 대신,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내가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서 속상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어 보여줄 때, 타인이 나를 공격하는 것이 더 어려워집니다. 이는 상대의 방어막을 올리게 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감정과 함께 ‘여기까지가 당신이 넘어오면 안 되는 선’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는 부드럽고도 단호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당신 이야기의 선장은 오직 당신입니다.

타인의 시선과 말의 폭풍우 속에서 내 마음의 키를 굳게 잡는 일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감정을 다독이고, 나만의 가치를 되새기며, 건강한 관계를 연습해나가는 평생의 여정에 가깝습니다. 타인의 말은 바람이 되어 당신의 배를 흔들 수는 있겠지만, 당신의 항로를 결정하는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은 선장인 당신뿐입니다. 당신이 내린 닻을, 다른 사람이 함부로 흔들게 두지 마세요. 그렇게 당신의 서사를 스스로의 언어로 온전히 채워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깊고 단단한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나눈 심리학의 지혜들이 그 여정을 위한 든든한 나침반과 지도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약력

정신과 전문의 신재현 원장은 현재 강남푸른정신과를 운영 중이다. 계명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으며 인지행동치료, 불안장애치료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저서로는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등이 있으며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상담을 통해 환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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