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AE QUARTERLY MAGAZINE
VOL.40 SPRING
HANSAE QUARTERLY MAGAZINE
VOL.40 SPRING
서명은 교수의 과학이야기
전선으로부터
자유를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메카인 에반게리온은 전기로 움직인다. 엄빌리컬 케이블이라 불리는 굵은 전선을 등에 연결한 채로 전투에 돌입하는데, 어쩌다가 케이블이 빠지면 에반게리온의 활동 시간은 기체 내부에 충전된 전력이 버텨줄 수 있는 한도인 5분으로 제한된다. 마주한 사도에게 결정타를 날리려는 순간 방전되면서 움직임을 멈추는 에바를 보고 있으면 배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작동 시간과 무게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모두 당연히 유선 이어폰을 썼고, 휴대폰과 노트북에는 직경 3.5mm의 이어폰 단자가 있었다. 요즈음에는 단자가 없는 기기들이 훨씬 많아 보인다. 무선 이어폰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무선 이어폰을 써 보면 장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전선이 이리저리 엉키거나 다른 선과 간섭을 일으키는 문제로부터 원천적으로 해방된다. 둘째, 휴대폰과 떨어져 있어도 소리를 듣는 데 문제가 없다. 즉 기존의 유선 기반 연결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움직임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물론 그 반대 급부로, 유선 이어폰은 (노이즈 캔슬링과 같은 부가 기능이 없다면) 충전이 필요 없는 반면 무선 이어폰은 반드시 내부 배터리를 충전해 주어야만 작동하며 또한 배터리 무게만큼 상대적으로 더 무거워진다.
이어폰처럼 끼고 있는 사람 귀에만 들리는 정도로 소리를 출력하는 수준의 전력 소모량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휴대폰과 노트북은 보다 많은 전력량을 요구하지만, 그만큼 덩치도 크기 때문에 더욱 큰 배터리를 탑재하여 작동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사람이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니 항상 무게와 성능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데 기기 자체가 움직여야 하는 경우, 배터리를 더 많이 실을수록 기기의 중량도 증가하므로 움직임에 소요되는 전력량이 늘어나 어느 시점에서는 효용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전기자동차가 그렇고, 드론이 그렇다. 특히 중력을 거슬러 하늘을 날아야 하는 드론의 경우 작동 시간이 상대적으로 크게 제한된다. 비행기가 내연기관을 버리기 어려운 이유다.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는 안드로이드도 마찬가지 이슈에 부딪힐 것으로 생각된다. 2024년 뉴욕시는 지하철역 순찰을 위해서 로봇 경찰을 도입했지만 이내 사용을 중단했는데, 심지어 걸어다니는 것도 아니라 바퀴로 굴러다니는 이 로봇이 쉴 필요 없이 하루종일 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충전 스테이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리튬 이온 전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배터리는 납축전지, 알칼라인 전지, 리튬 전지 등 그 종류가 다양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기기들에 탑재된 배터리는 거의 대부분 리튬 이온 전지이다. 2019년 노벨화학상은 리튬 이온 전지를 발명한 공로로 M. Stanley Whittingham, John B. Goodenough, Akira Yoshino에게 돌아갔다. Whittingham이 리튬 이온이 가역적으로 들락날락하면서 작동하는 리튬-알루미늄 양극재를 처음으로 개발한 이후, Goodenough가 리튬-코발트 산화물 양극재를 만들었고, Yoshino는 애초 전도성 고분자인 폴리아세틸렌과 리튬-코발트 산화물 양극재를 조합했다가 폴리아세틸렌 대신 탄소 음극재를 써서 지금까지 쓰이는 리튬 이온 전지의 구조를 완성했다. 1992년 소니가 리튬 이온 전지를 상업화하여 가볍고 충방전이 가능한 배터리를 선보인 이후 워크맨, 노트북, 휴대폰, 전기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그야말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리튬의 원자 번호는 3번으로 가장 작은 금속 원자이다. 작으니까 같은 개수의 원자를 넣더라도 다른 원소 대비 더 가볍다. 리튬 앞에는 헬륨(2번)과 수소(1번)밖에 없다. 헬륨은 불활성 기체여서 반응성이 극히 낮아 에너지를 저장했다 꺼내 쓰는 전지에 쓸 수 없다. 수소와 리튬은 둘 다 최외곽 껍질에 전자를 하나만 가지고 있어서 쉽게 전자를 하나 잃고 양이온이 된다. 리튬 원자가 전자를 쉽게 잃는다는 말은 반응성이 매우 강하다는 뜻과 상통한다. 리튬에 물이 닿으면 폭발적으로 반응하며 리튬 수산화물과 수소 기체를 만들 정도이다. 그래서 리튬 금속을 다룰 때는 공기 중의 수분을 최대한 없앤 드라이룸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리튬 이온 전지는 이 리튬 양이온을 이용해 전지를 구동한다. 음극은 흑연과 같은 탄소를 쓴다. 같은 탄소라도 다이아몬드는 3차원적으로 탄소 원자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굉장히 단단하고 전기를 통하지 않는 반면, 흑연은 탄소 원자들이 서로 결합해 만들어진 전도성 판들이 켜켜이 쌓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연필을 종이에 문질러 글씨를 쓰면 검정색이 나타나는 이유도 흑연의 탄소 층이 조금씩 떨어져 나와 종이로 옮겨오는 까닭이다. 리튬 이온은 이 판 사이의 틈에 쉽게 드나들 수 있다. 전자를 받으면(즉 환원되면) 리튬 원자가 되고, 전자를 잃으면(즉 산화되면) 리튬 이온이 된다. 반대쪽 양극에서는 역시 층상 구조로 이루어진 리튬-코발트 산화물이 있다. 음극에서 옮겨온 리튬 이온은 층 사이로 끼어들고, 코발트 원자가 전자를 받으며 환원된다. 리튬이 산화되면서 나오는 에너지가 코발트의 환원에 드는 에너지보다 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차이만큼 남는 에너지를 얻어서 기기에 전력을 공급한다. 반대로 음극에 전자를 넣어주어 전지를 충전하면 리튬 이온들이 양극 속에서 빠져나와 탄소 음극 속으로 들어오면서 전자를 받고 리튬 원자로 환원되어 다시 산화될 때를 기다리게 된다. 리튬 이온은 이처럼 각 극재 사이를 반복해서 오가면서 산화되었다 환원되었다 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충방전이 가능하다. 물론 오래 쓸수록 극재 내부 구조가 조금씩 바뀌면서 배터리의 용량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충전하지 않아도 하루종일 거뜬하던 휴대폰이 세월이 흐르면 한나절 지나고 나니 배터리가 1/3토막이 나 있는 일들을 많이들 겪어봤을 성 싶고, 휴대폰을 바꾸는 가장 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세 가지는 휴대폰 신호가 안 잡히는 것, 와이파이 시그널이 깜빡깜빡하는 것, 배터리 잔량이 깜빡깜빡 하는 것이지 않는가?
더 안전하게, 더 오래가게, 더 가볍게
리튬 이온 전지를 구동해서 에너지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전자는 바깥 회로를 타고 움직이는 동안 리튬 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왕래할 수 있으면서도 두 극재가 직접적으로 접촉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 쓰이는 전지는 보통 리튬 이온을 유기용매에 녹인 액체 전해질로 극재 사이를 채우고, 그 가운데에 다공성 고분자 분리막을 넣어서 두 극재가 서로 맞닿는 일을 방지한다. 분리막은 당연히 고분자로 만든다. 정수 이야기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다른 어떤 소재를 가지고 수십 마이크로미터 두께의 얇은 막을 뽑아서 도배지처럼 둘둘 감긴 롤을 만들 수 있겠는가? 폴리에틸렌이나 폴리프로필렌처럼 저렴하면서도 기계적 물성이 우수하고 전지가 구동되는 조건에서 화학적으로도 안정한 고분자들이 분리막으로 주로 쓰이며, 요즘에는 표면에 세라믹을 코팅해서 물성을 더욱 향상한 버전들도 사용된다. 분리막이 두껍거나 리튬 이온이 지나갈 수 있는 빈 공간이 적을수록 저항으로 작용해서 전지의 효율이 떨어진다. 그러나 만에 하나 분리막을 뚫고 극재가 접촉하면, 전자가 바로 음극에서 양극으로 넘어가면서 반응이 급격하게 일어나고 많은 열을 발생시킨다. 이 ‘열폭주’ 와중에 유기용매에 불이 붙고 노출되는 리튬이 공기 중 수분과 반응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노트북과 휴대폰에 불이 붙거나 전기자동차에서 시작된 불이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모두 태웠던 사건들 모두 리튬 이온 전지의 안정성 이슈와 직결되어 있다. 비행기를 타면 항상 나오는 안내 중에 휴대폰이 좌석 사이로 빠졌을 때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승무원을 부르라는 이유도 리튬 이온 전지가 강한 압력을 받으면 분리막이 파손되면서 극재끼리 접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유기용매를 쓰지 않으면 안정성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전지가 고체 전해질을 적용해서 모든 구성요소가 고체인 ‘전(全)고체 전지’이다. 문제는 이온이 움직이는 속도가 흐를 수 있는 액체 상태보다 굳어있는 고체 상태에서 보통 훨씬 느리기 때문에, 전도도를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요즈음 분위기는 아지로다이트(arzyrodite)라 불리는 구조에 리튬을 포함한 황화물계 무기물 소재를 고체 전해질로 쓰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고체지만 신기하게 제법 리튬 이온 전도도가 나오고, 리튬염을 녹일 수 있는 한계가 있는 유기용매에 비해 리튬을 넣는 양 자체는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며, 무기물답게 딱딱해서 아예 분리막을 빼고 전해질로만 전지를 조립해도 되는 등의 장점이 많아 우리나라 전지 회사들이 빠른 시일 내 양산 및 상용화를 목표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분자는 여기에서도 빠지지 않는데, 전해질 층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이 무기물 입자들이 따로 놀지 않고 서로 붙어서 하나의 소재로 거동할 수 있게끔 하는 고분자 바인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체 전해질뿐만 아니라 음극재와 양극재 또한 구성 요소들이 입상인 경우들이 많아서 다양한 고분자 바인더가 소재별로 활용되고 있으며, 전지의 성능을 더욱 높이고 과불화화합물(per- and polyfluoroalkyl substance, PFAS) 규제와 같은 기술 장벽에 대응하기 위해 필자의 실험실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바인더 소재들을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리튬의 함량을 키우고 안정성을 키우기 위해서 새로운 양극재와 음극재를 개발하고자 하는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뉴스에서 리튬 이온 전지 양극재로 NCM 또는 NCA 삼원계와 LFP 이야기가 한동안 많이 언급되었는데, 우리나라는 처음에 삼원계 배터리 쪽을 택한 반면 중국은 LFP 양극재에 집중 투자했다. 코발트(Co, 여기서는 C로 약칭)와 망간(Mn, 여기서는 M으로 약칭) 또는 알루미늄(Al, 여기서는 A로 약칭)을 조합한 삼원계 양극재가 성능은 좋지만 비싸고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철(Fe, 여기서는 F로 약칭)과 인(P)으로 구성된 LFP 양극재가 가격과 내구성의 우위를 앞세워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앞서가기 시작하는 분위기이며 우리나라 회사들도 LFP 쪽에 뛰어들고 있다. 음극재에서는 탄소 전극보다 이론적 용량이 훨씬 높은 실리콘이 오래전부터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실리콘은 충방전 과정에서 부피가 매우 크게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특성 때문에 전극이 금방 망가지는 문제가 아직까지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테슬라처럼 적당량의 실리콘을 탄소에 섞어 탄소 100%보다는 용량을 높이는 타협책을 취하거나, 아예 실리콘 입자에 탄소를 코팅한 복합재를 만들거나, 아주 유연한 고분자 바인더를 써서 부피 변화를 잡아보려는 등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되는 중이다.
아예 리튬 금속 자체를 음극재로 쓰면 전체가 리튬이기 때문에 용량이 확 늘어난다. 물론 그만큼 위험성도 커진다. 대표적으로 리튬 음극 표면에서 리튬 이온이 환원되어 리튬으로 돌아갈 때, 먼저 반응한 부분에 마치 피뢰침처럼 전자가 몰려 반응이 더욱 가속화되면서 리튬 금속이 나뭇가지처럼 자라나는 덴드라이트(dendrite) 형성 현상이 알려져 있다. 분리막이 리튬 이온을 리튬 음극 표면에 고르게 나누어주지 못하거나 리튬 금속 덴드라이트가 성장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단단하지 못하면, 덴드라이트가 재빠르게 자라 분리막을 뚫고 양극에 접촉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폴리올레핀 기반의 분리막들은 리튬 이온의 크기에 비하면 거의 운동장 수준으로 넓은 몇백 나노미터에서 마이크로미터를 상회하는 빈 공간을 포함하고 있어서 리튬 이온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한 곳에 집중적으로 쏟아지게 되며, 덴드라이트의 성장을 막을 수도 없다. 만약 빈 공간의 크기를 아주 작게 줄여서 나노미터 수준의 세공을 만들면서도 크기와 세공 표면의 성질을 잘 조절하여 음이온은 못 넘어가는데 리튬 이온만 잘 넘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면, 음이온이 분해되어 쓸모없는 계면층이 생기는 것을 막고 리튬 금속이 평평하게 쌓이게끔 도와서 전지가 안정적으로 구동될 수 있는 조건을 잡아낼 수 있다.
실제로 필자의 연구팀이 10nm 수준의 세공으로 구성된 분리막을 개발하고 공동연구를 통해 리튬 전지에 적용했더니 몇백 사이클을 구동해도 전지가 죽지 않고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여 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다. 전지의 단위 무게당 혹은 부피당 용량을 올리면 그만큼 적은 전지를 탑재해도 되니까 경량화가 가능하다. 반대로, 전지를 매우 튼튼하게 만들어서 강판 대신 쓸 수 있다면 대체하는 강판 무게만큼 이득을 볼 수 있다. 이쪽 방향으로 개발되는 전지를 구조 배터리라 한다. 전고체 전지도 안정성이 충분하다면 구조 배터리의 일종으로 생각할 수 있다. 구조 배터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힘이 가해질 때 변형되지 않고 버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령 변형되더라도 배터리로서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파손되면 새는 액체 전해질을 그냥 쓸 수는 없고, 고분자를 견고하게 가교하고 불연성 액체를 내부에 가두어 쓰거나 고체 전해질을 쓴다. 이때 액체 전해질은 전극 표면에 젖어 있기 때문에 접촉을 유지하기 쉽지만, 가교된 고분자 전해질이나 고체 전해질은 변형되는 상황에서도 전극에 잘 달라붙어있도록 소재를 설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필자의 경우, 표면에 뾰족뾰족하게 가시가 나 있는 전극 소재를 개발한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통해서 전극 사이에 액체 상태의 단량체를 넣은 다음 중합 반응을 통해 고분자 전해질로 만들고 구조용 슈퍼캐퍼시터로 응용했던 적이 있다. 정말 소자를 휘어도 계속 밝게 빛나던 다이오드가 신기했던 기억이다.
미래를 점치기는 항상 어렵다
배터리 산업이 ‘캐즘’에 빠져있다고들 많이 이야기한다. 얼리어답터들이 주도하는 초기 시장이 대중화된 주류 시장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수요가 정체되는 현상이란다. 가장 큰 수요를 전기자동차로 가정할 때, 해마다 판매 대수가 30% 이상씩 성장하고 있는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을 놓고 배터리 산업이 위기인 이유를 언뜻 쉽게 납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전기차 생산량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도 내수 시장에서 신차를 주행 거리 0킬로미터 중고차로 돌려 팔면서 판매 대수를 늘리는 문제 등이 불거지고 있고 수출 국면에서도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장벽 등으로 실제 이윤으로 연결되는 호황이 지속될지는 알기 어렵다고 한다. 전기차 외에 리튬 이온 전지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커다란 시장이 있다면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텐데, 전기차도 이러한 상황에 안드로이드 시장이 그만큼 빨리 열릴지는 미지수다. 또한 리튬이 아주 드문 원소는 아니지만 소금에 들어있는 소듐만큼 흔한 것은 아니다 보니 순수하게 얻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아서, 어떻게 리튬을 더욱 손쉽게 얻거나 폐배터리에서 뽑아낼 수 있을지도 기술적/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고분자 연구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배터리처럼 고분자와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분야도 사실은 굉장히 다양한 고분자 소재가 쓰이기 때문에 공동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 필자가 학교에 임용되어 연구를 시작할 당시 배터리에 대해 배우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학계의 연구 트렌드에서 리튬 이온 전지는 한물 간 듯한 기분이었고 리튬-황 전지, 리튬-공기 전지, 수계/비수계 레독스 흐름 전지 등에 관심이 많이 쏠려 있었다. 그런데 그 많던 차세대 전지 중에 지금 현실에 가까워진 것은 전고체 전지 하나뿐이며, 리튬 이온 전지는 아직까지도 여전히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앞날을 내다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아이작 아시모프가 본인 소설 속의 로봇은 ‘핵에너지’로 구동된다고 퉁치고 말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