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보트의 꽃은 선내 프로그램이었다. 유홍준 선생님, 승효상 건축가, 이정모 관장, 김종성 교수,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송길영 작가, 은희경 작가, 남궁인 의사, 박상영 작가, 연예인 노홍철 씨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지식인과 유명인들과 함께 한 배를 탔고 선내 식당과 카페테리아, 기항지에서 이들을 몇 번씩 마주치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강연 프로그램은 누군가 삶을 바쳐 연구해 온 내용을 압축하여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승객은 2,300명이 탑승했다. 주로 마주치는 이들은 50~60대 전후의 부부 혹은 친구들로 간혹 아이들과 가족 여행을 온 사람들도 보였다. 사랑하는 일을 하며 한 길을 걷는 사람들, 우아함과 지성을 갖춘 어른, 여유로운 태도로 타인과의 교류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현실에 갇혀 살고 있지는 않은가 반추하게 되었다. 또 좋았던 것은 선사에서 준비한 선상 투어였다. 유럽에서 온 댄서, 가수들의 대기실, 2천 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주방과 1천 명의 크루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한국인 가이드와 함께 둘러보는 특별한 기회였다. 선박에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재활용품 분리수거 시설, 오염수 정화 시설, 자가발전 시설 등이 갖춰져 있었으며, 이는 크루즈 협회의 공동협약에 따라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했다.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바다를 지키는 방법 또한 연구하고 있었다.
대만 기륭-타이베이, 일본 오키나와, 나가사키(아리타)까지 세 기항지의 일일투어는 효율적인 동선을 고려한 일정으로 구성되었다. 이동 중에 가이드들에게 역사, 국제관계, 현대사에 대해 속성 과외를 들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지역의 시골 동네임에도 정갈한 길가와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건축물들, 지역 특산물의 원활한 유통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식당과 가게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서빙을 하는 것도 인상 깊었다. 중년과 노인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사회 분위기와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이상 배의 화려함에 놀라지 않고 선박 내에서 길을 잃지 않게 될 때쯤 아쉽게도 여행은 끝을 향하고 있었다. 엄마는 7박 8일 동안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도 밥을 잘 먹었다며 좋아하셨다. 유홍준 선생님 강연과 손호준 교수님의 미국 현대사 강연, ‘고래와 나’ 환경 다큐 상영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고도 하셨다. 엄마와 나는 가족들의 배려 덕분에 꿈 같은 날들을 보냈고, 동료들에게 건넬 간식거리들과 함께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