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미식에세이

겉면을 지지면 육즙이 안 빠진다고?

스테이크의 겉면을 지지는 건 육즙 가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잘못된 믿음의 뿌리는 소작(燒灼), 즉 지짐술이다. 약품이나 전기로 병 조직을 태우는 외과적 치료법으로 출혈을 막는데도 쓰인다. 따라서 같은 단백질인 육류나 생선을 지지면 겉면이 방수 처리되니 육즙이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잘못된 믿음이 형성되었다. 말도 안되는 믿음이지만 역사가 무려 18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가설을 제기했다. 고기를 끓는 물에 삶으면 단백질인 알부민이 겉에서 안으로 굳으면서 껍데기를 형성해 수분의 침투를 막으니 같은 이치로 내부의 육즙 또한 밖으로 스며 나오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얼핏 듣기에 그럴싸해 요리사나 요리책 필자들 사이로 빠르게 펴져나갔다. 심지어 현대 프랑스 요리의 기틀을 다진 대가 에스코피에마저 수긍했었던 가설이 논파된 것은 80년 뒤인 1930년대였다. 같은 부위와 무게의 고기 두 덩어리를 준비해 하나만 겉을 지진다. 그런 다음 직화든 오븐이든 원하는 조리법을 택해 같은 내부 온도에 이를 때까지 익힌 뒤 무게를 달아 본다. 리비히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아야 하므로 겉을 지진 고기가 더 무거워야 한다. 물론 결과는 그렇지 않았으니 두 덩어리의 무게는 여전히 똑같았다. 소작처럼 육즙 가설의 핵심은 단백질의 방수처리 가능 여부인데 당연히 불가능하다. 스테이크를 구우면 지글거리는데, 고기 안쪽의 육즙이 빠져나와 뜨거운 팬에 닿는 순간 수증기로 변해 나는 소리다. 겉면을 지져 완벽하게 방수가 되었다면 육즙이 빠져나올 리 없고 소리도 나지 않을 것이다. 

고기의 맛을 결정짓는 '마이야르 반응'

내부의 육즙을 가둘 수는 없지만 고기의 겉면을 지지는 건 맛 때문에 여전히 중요하다. 열을 통해 탄수화물이나 아미노산이 반응해 검정색에 가까운 갈색으로 변하고 맛이 더해진다. 이러한 반응을 프랑스 화학자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의 이름에서 따와 마이야르 반응이라 일컫는데 거의 모든 요리에서 찾을 수 있다. 고기를 약한 불에 뭉근하게 끓이는 스튜도 일단 재료의 겉을 지져 맛을 최대로 끌어낸 뒤 물이나 육수를 부어 끓인다. 한편 더하는 육수조차도 오븐에 구워 맛을 끌어낸 송아지나 닭 뼈로 끓인 것이다. 구운 커피 생두의 복잡 미묘함, 구운 빵 껍데기나 누룽지의 짙은 색과 구수한 맛 또한 마이야르 반응 덕택이다. 마이야르 반응이 중요한 스테이크(steak)는 ‘불에 구운 고기’다. 구이를 의미하는 노르웨이 고어 스테이크(steik)에서 나왔다. 두꺼운 고기를 굽는데 휴식이 기본이다. 구운 뒤 상온에 가깝도록 온도를 내려 맛도 느끼고 육즙이 흘러나오는 것도 막는다. 다른 동물의 고기도 스테이크라 부를 수 있지만 그래도 쇠고기를 구워야 짝이 제대로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처럼 직화구이가 핵심이지만 사실 스테이크의 조리는 냉장고에서부터 시작된다. 고기의 제 맛을 찾는 데 숙성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기를 완성시키는 숙성의 원동력은 효소다. 동물이 도살되면 세포 또한 기능을 멈춘다. 이를 효소가 공격한다. 그 결과 무미(無味)의 큰 분자를 맛을 지닌 작은 분자로 변환시킨다. 

숙성된 고기, 그 비밀을 풀다

사실 숙성은 전혀 낯선 개념이 아니다. 다만 몰랐기에 눈에 뜨이지 않았을 뿐이다. 동네 마트 정육 코너만 가도 숙성 중인 고기를 찾을 수 있다. 진공포장으로 싸여 진열장에 누워 있는 것들이다. 물론 목적은 산소의 접촉 차단을 통한 장기 보존이지만 그 과정에서 숙성도 이루어지니 그게 바로 습식 숙성(wet aging)이다. 낮은 온도와 진공 포장 탓에 습식 숙성은 소극적이고 진짜는 건식 숙성(dry aging)이다. 온도와 습도를 통제한 공간에 고기를 노출시켜 숙성시킨다. 섭씨 1~3도에 습도는 70~80%, 원활한 공기 순환을 위해 고기는 대개 매달아 보관한다. 효소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으니 맛과 육질이 월등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니 쇠고기라면 요즘은 120일 이상도 숙성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제 스테이크가 확실히 자리를 잡아 쇠고기라면 집에서도 두툼한 고기를 구워 즐기는 경우가 흔하다. 스테이크는 질감의 대조가 핵심이라 고기가 부위 무관 2~2.5cm두께는 되어야 바삭한 겉과 부드러운 속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다. 이렇게 두께를 확보하려면 무게도 어느 정도 나갈 수밖에 없다. 맛보기 코스에 나오는 게 아니라면 적어도 200~250g은 나가야 고기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물론 부위의 선택도 중요한데 어차피 불에 구워 그대로 먹을 수 있는 부위는 어차피 한정되어 있다. 질기지 않으며 마블링, 즉 지방의 결이 살 사이사이로 속속들이 배어있는 부위가 좋다. 구우면 지방이 녹아 배어나와 부드러움과 맛을 더해준다. 우리가 투뿔 꽃등심을 선호하는 이유인데, 같은 부위인 립아이가 스테이크에도 최상의 부위다.

그 다음이 갈비 뒤쪽의 채끝, 즉 뉴욕 스트립이다. 큰 살덩어리가 뭉쳐 있으므로 스테이크로 잘라내기 좋은 부위다. 다만 운동을 많이 하지 않아 맛도 부드러움도 조금 어중간하다. 마지막으로 부드러움이 최고지만 맛은 약한 안심(텐더로인)이 있다. 운동을 안 하는 근육이라 부드러움은 뛰어나지만 진한 쇠고기의 맛은 품고 있지 않다. 집에서 스테이크를 잘 구워 먹으려면 오븐을 갖추지 않는 한국의 가정에서는 팬에 익히는 게 좋다. 기름을 두르고 중불에 올려 연기가 피어오를 때까지 달군 팬에 소금을 넉넉히 뿌린 고기를 얹어 자주 뒤집어 가며 한 면 당 2~3분 굽는다(두께 2.5cm 기준). 미디엄의 내부 온도가 섭씨 60도 안팎이나 조리용 온도계로 확인한다. 구워진 스테이크는 접시에 담아 은박지로 잘 싸 5분가량 두었다가 썰어 먹는다. 



약력

이용재 음식 평론가 겸 번역가. 한양대학교와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건축 및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고, 애틀랜타의 건축 회사 tbs 디자인에서 일했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저자로서 ‘맛있는 소설’,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미식대담’, ‘조리 도구의 세계’, ‘식탁에서 듣는 음악’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실버 스푼’, ‘뉴욕의 맛 모모푸쿠’, ‘인생의 맛 모모푸쿠’,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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