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현의 마음을 살피는 기술


괴롭힘의 심리학



최근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연이어 보도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단순한 개인 간 갈등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경쟁과 위계질서 속에서 괴롭힘이 발생하고 지속되는 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더욱 깊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괴롭힌다는 사실은 참담하기만 합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직접 겪었거나 목격했을 수 있는 일이기에, 이는 단순히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괴롭힘은 단순한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조직적 요인이 얽혀 형성된 복합적인 현상입니다. 우리는 흔히 괴롭힘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로만 바라보지만, 이를 방관하거나 조장하는 조직 문화와 목격하는 제 3자의 태도 또한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다면 괴롭힘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타인의 괴롭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집단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공고히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시 사회에서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본능이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권력 다툼과 괴롭힘으로 변형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본능적 성향과 함께 얽혀 있는 환경적, 사회적 맥락도 문제입니다. 경쟁이 심한 조직이나 위계가 강조되는 환경에서는 강자가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내부 불안을 해소하려는 경향도 있습니다. 개인주의적 문화가 확산되면서 ‘나만 피해를 입지 않으면 된다’는 심리가 괴롭힘을 방관하는 태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괴롭힘을 조장하는 또 하나의 주요 요인은 사회적 보상 구조입니다. 가해자는 괴롭힘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획득하고, 타인을 통제하는 데서 쾌감을 얻기도 합니다. 이를 주변에서 묵인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하면, 가해자는 더욱 대담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주변의 시선은 피해자를 더욱 위축되고 저항할 힘을 잃게 합니다. 


괴롭힘을 주도하는 가해자는 

외적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실은 내면적으로 

불안과 분노,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괴롭힘을 이용하며, 타인을 조종하려는 

성향이 강한 경우도 있습니다. 

가해자의 심리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괴롭힘이 쉽게 발생하는 환경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위계질서가 강하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서는 특히 상급자의 권력을 남용하기 쉬우며, 이에 따라 괴롭힘이 구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교나 직장이 그런 곳이죠. 또한, 업무 스트레스가 극심한 환경에서는 구성원 간 갈등이 증가하면서 특정 개인에게 비난과 괴롭힘이 집중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여유가 없는 곳에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설 곳은 없어지는 법이니까요. 회사의 규칙과 절차가 모호하거나 신고 체계가 미흡한 경우, 피해자는 문제 제기를 부담스럽게 느껴 결국 침묵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게 되기도 합니다.

괴롭힘을 지속하는 사람들은 종종 어린 시절부터 권력의 균형을 잘못된 방식으로 학습했거나, 타인을 지배하는 것이 자신을 안전하게 만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건강하게 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경우가 많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불안과 열등감을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공감 능력이 낮고 감정 조절이 미숙한 경우가 많아, 상대방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괴롭힘을 당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을 탓하게 됩니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반복되면서 위축되기 쉽습니다. 스웨덴의 심리학자 레이만은 직장 내 괴롭힘을 ‘조직 내에서 체계적으로 한 개인에게 가해진 심리적 테러’라고 말했습니다. 괴롭힘이 장기화되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자존감이 급격히 낮아지게 됩니다. 반복된 부정적인 경험이 누적되면 자신을 방어하는 힘이 약해지고, 가해자의 말과 행동을 내면화하면서 ‘내가 문제가 있어서 이런 일을 당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기도 합니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 고개를 드는 순간입니다. 괴롭힘을 당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지속적인 불안과 우울을 경험합니다. 마음과 함께 몸도 아파집니다. 신체적으로도 불면증, 두통, 위장 장애 같은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으며, 오랜 기간 스트레스에 노출될 경우 타인을 꺼려하고 피하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혹시 내가 오해한 걸까?’,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는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괴롭힘에서 벗어나며, 다시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은 괴롭힘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책으로만 끝내지 말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들에게 심리적 지지와 실질적인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필요한 경우 법적·제도적 도움을 여러 기관에 요청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참는 것 외에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처가 다양하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됩니다. 괴롭힘을 당했다고 해서 혼자 해결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괴롭힘을 당해 취약해진 자신의 감정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괴롭힘을 당한 후 분노, 수치심, 무력감, 우울감 등의 감정이 들 수 있으며,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억누르거나 외면하려 하기보다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내 삶을 더 빨리 통과해 지나가게 됩니다. 감정을 기록하는 감정 일기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의 공감적인 대화도 감정을 해소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감정, 그리고 상황에 대해 ‘건강한 거리 두기’ 전략이 중요합니다.


괴롭힘은 혼자서만 안고 가야 할 

개인의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많은 피해자는 괴롭힘을 당한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려 하지만, 

괴롭힘의 책임은 전적으로 

가해자에게 있습니다. 

자신이 ‘뭔가 부족해서 이런 일을 겪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며, 

이를 위해 객관적인 시각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가해자와의 불필요한 접촉을 줄이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됩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 있다면, 부서 이동을 고려하거나 상급자 및 인사 부서에 문제를 알리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생활 습관을 통해 자신을 돌보며 정신적·신체적 회복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괴롭힘이 지속되는 이유 중 하나는 주변 사람들이 방관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목격자들은 종종 괴롭힘에 개입하면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올까 봐 망설입니다. 하지만 괴롭힘에 대한 여러 연구에 따르면, 제3자가 피해자를 지지하는 행동을 보이면 가해자의 행동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직접적으로 맞서기 어렵다면, 피해자에게 다가가 그저 안부를 묻거나 무엇인가를 같이 하자는 신호만 주어도 큰 위안이 되며, 추가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상급자나 담당 부서에 알리는 것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괴롭힘이 일어나는 상황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괴롭힘이 정당화되지 않는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조직 내에서 괴롭힘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가해자들은 더 이상 같은 행동을 반복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를 위해 회사는 괴롭힘 예방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피해자가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는 익명성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괴롭힘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피해자는 혼자가 아니며,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괴롭힘을 줄이기 위해서는 방관하는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피해자를 지지하는 문화가 조성될 때, 비로소 괴롭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방관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 될 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논의가 이어져야 합니다.


약력

정신과 전문의 신재현 원장은 현재 강남푸른정신과를 운영 중이다. 계명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으며 인지행동치료, 불안장애치료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저서로는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등이 있으며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상담을 통해 환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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