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현의 마음을 살피는 기술

이터널 선샤인 스틸컷
이터널 선샤인 스틸컷

사랑은 참 어렵습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조엘과 클레멘 타인은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고, 서로의 기억을 지우려 하지만 결국 다시 끌립니다. 두 사람은 성격도, 행동도 완전히 다르지만, 그런 차이 때문에 더욱 강렬히 끌리게 됩니다. 처음 느낀 설렘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고, 때로는 사라지기도 하며, 예기치 않게 다시 시작되는 여정이 바로 사랑의 과정에 담겨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뇌와 마음이 함께 만들어내는 복잡한 메커니즘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요? 첫눈에 반하는 감정은 운명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의 뇌는 이미 수많은 계산을 끝낸 상태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첫인상은 7초 안에 결정된다고 합니다. 상대방의 얼굴, 목소리, 몸짓은 찰나의 순간에 우리의 뇌에서 빠르게 분석됩니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눈앞의 상대의 매력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 셈입니다. 특정 요소들, 특히 얼굴 대칭성이나 건강한 외모는 본능적으로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는 진화의 산물로, 건강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 끌리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반응입니다. 이 또한 우리의 의식 아래에서 은밀하게 작동하는 과정입니다. 동시에 상대방의 냄새나 목소리도 매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는 무의식적으로 유전자 다양성을 감지하려는 신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찰나의 첫인상에도 이토록 많은 요소들이 관여합니다. 첫눈에 반하는 과정은 단순한 심리적 반응이 아닌, 생물-화학적 반응에 가깝습니다. 

첫눈에 반하는 것은 단순히 외적인 매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뇌는 ‘친숙함’을 느낄 때도 강한 호감을 형성합니다. 어린 시절 좋은 기억과 연결된 외모나 말투, 행동이 상대방에게서 발견되면, 뇌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친숙함은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요소를 제공하고, 상대를 더 이상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또한, 문화적 영향도 큽니다. 영화, 드라마, 소설 속 이상형이 실제 인물에게 투영되면, 그 매력은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결국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외적 조건과 심리적 요소, 그리고 뇌가 만들어낸 화학적 폭발이 모두 맞아떨어지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첫 만남의 강렬한 설렘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연애 초반에는 도파민 같은 행복 호르몬이 뇌를 가득 채우면서 마치 모든 것이 완벽해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뇌는 점차 도파민 분비를 줄이고, 안정감을 찾으려 합니다. 이때부터 사랑은 본격적으로 변화를 겪게 됩니다. 설렘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과정은 오히려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기회입니다. 연애 초기의 열정은 그 자체로 즐겁지만,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더 안정적인 연결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유대감을 쌓는 일입니다. 단순히 대화를 나누는 것뿐 아니라, 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관계를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새로운 경험은 뇌 속에 강렬한 기억으로 저장되며, 이는 관계의 결속력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심리학적으로도 신뢰와 지지가 쌓이는 관계는 서로에게 더 깊은 감정을 느끼게 만듭니다. 믿음과 안정이 사랑을 지속시키는 핵심 요소라는 건, 어쩌면 가장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진리일 겁니다.

게리 채프먼는 그의 저서 <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사람마다 사랑을 표현받고 느끼는 방식이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칭찬을 통해 사랑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나 작은 선물을 통해 애정을 확인한다고 말하죠. 

그는 “자신의 사랑 언어가 아닌 방식으로 표현된 사랑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며, 상대방의 사랑 언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관계의 지속에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서로의 요구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랑의 본질을 보여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관계가 성숙하게 이어지기 위해서,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랑이 아름답게 지속되지만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환상이 깨지고, 현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초기에는 상대방의 장점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단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상대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관계의 성장 과정에서 필연적인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좌절한다면, 감정은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벽을 넘지 못하면, 두 사람 사이에 이별이 찾아오고, 고통스러운 터널이 시작됩니다. 

사랑이 끝난 후, 우리는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요? 이별 후 느끼는 고통은 단순한 슬픔 이상입니다. 사랑이 끝나면 우리의 뇌는 마치 금단 증상을 겪는 것처럼 반응합니다. 도파민 분비가 줄어들고, 뇌는 과거의 행복한 기억을 강렬히 떠올리며 아쉬움과 그리움을 증폭시킵니다. 또, 기억을 담당하는 중추인 해마와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협력하여 감정적으로 중요한 기억을 재활성화하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별 후에도 상대방의 모습이 계속 떠오르고,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별 후, 얼마간은 과거의 기억과 그리움에 젖어 지내게 됩니다. 


이별 후 초기에는 고통이 극대화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뇌는 점차 안정적인 상태를 되찾습니다. 사랑에 대한 화학적 의존이 줄어들고, 뇌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시기를 ‘자아 회복 단계’로 설명하며, 자신을 돌보고 성장하는 기회로 삼을 것을 권유합니다. 예컨대 슬픔에 집중하는 것보다 새로운 목표를 다시 설정하거나, 주의를 환기할 수 있는 창의적인 활동에 몰두하는 것이 아픔과, 불안정한 감정을 안정시키는 데 효과적입니다. 자기 자신과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쉬어 갈 수 있는 시간을 자신에게 허락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에서는 사랑과 이별의 과정에 SNS를 비롯한 디지털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SNS나 메시지 기록이 관계를 끝낸 후에도 상대방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만들죠.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세상에 남겨진 흔적이 이별 후 뇌의 치유 과정을 방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별 후, SNS로 계속 연결돼 있다면, 이를 정리하고 당분간 거리를 두는 것이 더 빠른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랑은 단순히 감정의 문제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첫눈에 반하는 열정도, 서로 끌리게 되는 과정도, 관계를 유지하는 안정감도, 끝나는 아쉬움도 모두 우리의 뇌와 마음이 만들어낸 정교한 작품입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감정과 기억을 지우려 해도 결국 다시 서로에게 끌리는 사랑의 복잡함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오래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노력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건강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랑은 단순한 설렘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서로의 마음과 삶을 함께 걸어가는 깊고 복잡한 여정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약력

정신과 전문의 신재현 원장은 현재 강남푸른정신과를 운영 중이다. 계명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으며 인지행동치료, 불안장애치료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저서로는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등이 있으며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상담을 통해 환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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