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AE QUARTERLY MAGAZINE

VOL.38 AUTUMN


김진효 변호사의 ESG

특별히 점심 약속이 없는 날에는 가끔 혼자서 밥을 먹는다. 소위 혼밥을 하는 건데 여럿이 같이 먹는 즐거움 못지않게 홀로 먹는 한 끼가 주는 나름의 만족감이 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혼자 먹어본 음식이 괜찮으면 나중에 누군가와 같이 오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근처에 25년 넘게 다닌 조촐한 식당이 하나 있다. 특별히 맛있는 음식으로 이름난 곳은 아니지만 단골이 꽤 많은 소박한 뚝배기집이다. 요즘도 가끔 혼자서 찾아가는데 오래전 학창시절 근처 어학원에서 공부할 때, 주변 번화가에서 연애할 때, 친구들과 만날 때 자주 앉았던 그 테이블에서 그 때 먹었던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 


음식 맛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만족스러운데 굳이 변한 게 있다면 20여 년 전에 비해 뚝배기 한 그릇 가격이 조금 올랐다는 것이고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들에게서 긴 세월 오랜 시간의 흔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같이 일하는 후배가 퇴사를 결정했다며 마지막 출근일에 점심을 같이 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좋아하는 후배가 떠난다는 말에 서운하기도 하고 그 친구의 앞날을 응원해 주고 싶기도 해서 마지막 식사는 평소 보다 더 근사한 곳에서 비싼 한 끼를 사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며칠 동안 주변에 제법 유명한 장소들을 하나씩 골라가며 고민했는데 특별히 마음 가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식사하기로 한 날 후배와 함께 그 뚝배기 집으로 갔다. 직장에서 누구를 데리고 간 것은 그 후배가 처음이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이 식당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이고 내가 왜 좋아하는 곳인지 설명해 준 다음 당신을 정말 아끼고 좋아해서 같이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 후배는 식사를 끝내고 나오면서 본인도 나중에 누군가를 데리고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아주 작은 공간에 10명 남짓 앉을 수 있는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이 식당은 어떤 매력이 있길래 꾸준히 단골 손님들의 발길을 끄는 것일까? 무엇이 혼자 찾아온 손님이 지인을 데리고 다시 오고 싶도록 만드는 것일까? 만약 이 식당이 기업이라면 소비자들은 왜 이 기업이 오랫동안 함께 있어 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서 소개한 소박한 식당은 기업의 ESG 경영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겉으로는 다소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조그만 식당에서 손님들은 단순히 음식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환대와 인간적인 유대감을 경험하게 된다. 


오랜 시간 쌓아온 이러한 경험은 본인만이 아는 그 식당과의 두터운 공감대가 된다. 이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경영 방식을 채택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즉, 기업이 지역사회와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신뢰를 쌓고 더 나아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소비자나 고객으로부터 인정받고 신뢰를 얻게 된다. 결국 기업은 소비자로부터의 신뢰를 통해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해외에서 머문 시간이 대략 6년 정도 된다. 외국에 있는 동안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면 가끔씩 그 뚝배기집도 생각났다. 항상 맛있게 먹었던 그 음식을 생각하며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그 식당이 계속 그 자리에 있어 주기를 바랐다. 다시 찾았을 때 같은 자리에 변함없이 있어 준 그 식당이 너무 고마웠고 반가웠음은 물론이다.



우리 곁에 항상 있어 주기를 바라는 기업이 있는가? 뚝배기 식당의 음식처럼 기업이 주는 제품과 서비스가 곁에 없으면 저절로 생각나게 하는 기업이 있는가? 만약 그런 기업이 있다면 별다른 평가 없이도 ESG 실천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 추천해 주고 싶은 기업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단적으로 그 뚝배기집은 ESG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훌륭한 모범이 되는 곳이다. 그 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이 ESG의 개념을 얼마나 이해하고 또 얼마나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어쩌면 모두 연세가 지긋하신 그 분들은 그동안 ESG라는 용어를 제대로 들어보지 못하셨을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이 손님들을 항상 따뜻하게 대해 주셨고 음식은 정성을 다해 한결같이 내어 주셨다는 것이다. 몇 십년 단골 손님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기업에게 ESG의 실천이란 무엇일까? 최근 ESG라는 용어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한다. 기업이 ESG 대응을 위해 따라야 하는 수많은 형식들과 절차에 얽매인 탓이 아닌가 싶다. 이들 기업에게는 ESG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형식이나 절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기업이 오랫동안 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 그 기업이 만들어 내는 제품과 서비스를 앞으로도 계속 이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주변 소중한 분들에게도 소개해 주고 추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기업이야말로 ESG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기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그 뚝배기 집의 음식은 가을에 더 맛있어서 올 가을에도 시간을 내어 그곳을 찾을 생각이다. 조그만 식당에서의 경험을 기업의 ESG 활동에 빗대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으나 아무튼 우리에게 오랫동안 함께 있어 주기를 바라는 그 뚝배기 집과 같은 기업들이 더 많이 생겨 났으면 좋겠다.



약력

김진효 외국변호사는 다양한 산업계를 대상으로 K-ETS를 비롯한 국내외 온실가스 규제 대응, 탄소중립 및 ESG 활동, 신재생에너지 및 탄소시장 진출, 탄소국경조정제 대응 분야에서 활동해왔습니다. 한국탄소금융협회 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환경, 에너지 인프라, 기업법무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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