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미식에세이

햄버거는 신기한 음식이다.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서 싸게 해치우는 한 끼가 될 수 있지만, 제대로 먹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지난한 여정을 떠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웬만해서는 만족스러운 것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햄버거의 핵심 정체성이자 매력은 부드러움의 변주이다.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려는 노력에서 오늘날 햄버거의 핵심인 패티가 탄생했다. 햄버거의 고향은 미국이라 믿기 쉽지만 사실 햄버거의 진짜 본관은 중앙아시아로, 타타르족이 먹던 날고기가 원형이다. 타타르족은 기마민족답게 말을 탄 채로 음식을 먹었는데 날고기를 달리는 말안장 밑에 둬 부드럽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육회와 유사한 스테이크 타르타르가 탄생했다. 이후 러시아와 독일을 거쳐 18세기 말, 함부르크 출신 이민자들에 의해 ‘햄버그 스테이크’라는 이름으로 미국으로 흘러들어가 햄버거가 되었다. 사실 이때까지 햄버거는 빵 사이에 끼워 먹는 음식이 아니라 주로 고기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번’이라 부르는 특유의 둥글고 부드러운 빵을 1916년 미국인 월터 앤더슨이 발명하면서 오늘날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햄버거는 세계적인 음식이다 보니 항상 원조에 대한 논쟁이 딸려 다닌다. 미국 위스콘신, 오하이오, 코네티컷 주에서는 각기 축제와 ‘세계에서 가장 큰 햄버거 도전’을 통해 자신들이 햄버거의 출생지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코네티컷 주 뉴 헤이븐의 위치한 ‘루이스 런치’에서는 역사가 189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원조 햄버거를 판다. 이곳의 햄버거는 두 장의 토스트 사이에 특유의 수직그릴로 구운 패티를 끼운 샌드위치 형태다.

또, 패스트푸드, 특히 햄버거로 인해 증가하는 육류 섭취는 세계 차원의 정치 및 경제 문제와도 맞물려 있으며 그 중심에는 옥수수가 있다. 일리노이나 아이오와주 같은 미 중부 지역은 끝도 보이지 않는 옥수수밭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러다 보니 정부 지원으로 경작해 넘쳐나는 옥수수를 창의적으로 소모하려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대체 감미료 액상과당, 식품 첨가제인 말토덱스트린 등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소와 양식 어류에도 옥수수 사료를 먹이는데 이러한 방식에는 부작용이 따라서 소의 경우 비육을 위해 먹이는 옥수수가 면역력 저하를 일으킨다. 그 결과 식중독을 유발하는 대장균의 위험이 상존해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햄버거를 나쁜 음식이라 매도하기에는 이르다. 햄버거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 적절히 조합된 따뜻한 샌드위치라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음식인데, 대량 생산의 굴레에서 자유롭다면 패스트푸드의 울타리 안에서도 건강하고 훌륭한 햄버거를 만들 수 있다.

미 서부에는 프랜차이즈 ‘인앤아웃 버거’가 있다. ‘맥도날드’와 같은 팽창 욕심을 버리고 품질을 우선시해 기본에 충실하고 좋은 재료를 매장에서 직접 손질한다. 수제 버거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여전히 수제라는 수식어는 ‘발로 만드는 것도 아닌데...’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큼 웃기다. 또, 한때 선정성에 기댄 햄버거들이 넘쳐나기도 했었는데 이런 햄버거들은 기본적인 조합을 벗어나 푸아그아나 캐비어와 같은 것을 얹어 주객을 완전히 전도시킨 햄버거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유행은 지났고 대체로 기본에 충실한 수제 버거가 대부분이다. 수제 버거 유행이 시작되면서 파인 다이닝 세계의 셰프들이 패티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출처를 모를 자투리나 그냥 먹기 어려운 부위를 갈아 쓰던 시대는 이미 지난 것이다. 탐구가 심화되는 만큼 노하우를 놓고 벌이는 갑론을박도 열기를 띄었다. 즉석에서 고기를 갈아 만드는 건 기본이고, 최고의 맛과 부드러움을 찾기 위한 블렌딩을 고민한다.

물론 원칙이나 출발점이 있으니 정육과 지방의 비율은 8:2를 가장 이상적으로 여긴다. 지방이 그보다 적으면 뻣뻣해지고, 반대로 지방이 많으면 느끼해지기 쉽다. 또, 고기의 부위도 중요하기 때문에 스테이크로 구워 먹기에는 마블링 분포나 육질이 빠지지만, 맛이 뚜렷한 쇠고기 맛을 지녀야 한다. 그런 조건을 고루 갖춘 부위가 바로 ‘척’이다. 이 부위는 목 바로 아래에 위치해있으며 우리말로는 ‘목심’, 또는 ‘알목심’이라 부른다. 

이런 고기를 덩어리째 들여와 직접 갈아 패티를 만드는 곳만이 수제 버거 전문점이라 할 수 있다. 미리 갈아 파는 고기의 경우 부위를 정확히 알기 어렵고, 입자와 질감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로 너무 곱게 갈아져 씹는 맛이 아예 없어도 실격이다. 적당히 굵어 힘들여 씹을 필요는 없으면서도 각각의 입자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대학원 시절, 구내식당 한군데에서는 패티를 손수 빚은 햄버거를 팔았다. 장갑을 낀 손으로 간 고기의 적당량을 떼어내 둥글넓적하게 빚는데 어느 누구도 힘주어 치대지 않았다.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요령이 이렇다. 일단 간 고기를 둥글게 뭉쳐 왼손바닥에 올린다. 오른손으로 가운데부터 바깥방향으로 가볍게 두들겨 넓적하게 모양을 잡아준다. 이때 크기와 모양에 신경써야 한다. 익힐 때 빠질 지방과 수분을 감안해 빵보다 대략 10%정도만 크게 빚는다. 구우면 쪼그라들어 빵의 그늘 아래 서는 패티만큼 초라한 게 없다. 또, 익힐 때는 가운데를 살짝 눌러야 다 익었을 때 가운데가 솟아오르지 않는다. 패티와 빵의 폭이 맞지 않거나, 가운데가 너무 솟아오르면 재료가 가지런히 쌓이지 않아 먹기 불편하다.

다들 미디엄 이하로 구운 햄버거 패티를 먹어본 적 있는가? 보통은 그런 경험이 없을 것이다. 나는딱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가운데가 아예 익지 않은 레어로 조리된 패티였다. 함박 스테이크가 따로 있듯 패티 또한 스테이크 대접을 해 줄 수는 있다. 숯불 그릴이나 길이 잘 들어 반질반질한 번철에 구워 겉에 바삭한 크러스트가 생겨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햄버거 패티는 덩어리 스테이크보다 안전에 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고기를 갈면 표면에만 있는 대장균이 전체로 섞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속까지 완전히 익지 않는다면 면역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노약자를 중심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식약청에서 지정하는 패티의 안전 내부 온도는 섭씨 80도로 웰던이다. 바싹 익혀도 촉촉하려면 역시 지방의 비율이 중요하다. 200그램대의 패티라면 잘 달군 무쇠팬에서 한 면당 5분 안팎으로 구웠을 때 딱 적당하다. 치즈는 불에서 내리기 1분 전에 얹는데, 이 경우만큼은 유화제 등의 첨가물로 균일하게 잘 녹는 가공 치즈가 좋다.



약력

이용재 음식 평론가 겸 번역가. 한양대학교와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건축 및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고, 애틀랜타의 건축 회사 tbs 디자인에서 일했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저자로서 ‘맛있는 소설’,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미식대담’, ‘조리 도구의 세계’, ‘식탁에서 듣는 음악’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실버 스푼’, ‘뉴욕의 맛 모모푸쿠’, ‘인생의 맛 모모푸쿠’,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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