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AE QUARTERLY MAGAZINE

VOL.38 AUTUMN


신재현의 마음을 살피는 기술


세상에는 왜 이렇게 

많은 사기꾼들이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사기는 그다지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즘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전세 사기, 금융 범죄, 다단계 사기까지 그 범위는 다양한데, 이러한 범죄들은 우리 일상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죠.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이야기지만 막상 내가 사기 피해자가 되는 것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우리 주변에도 사기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친구나 가족 중 한 명은 겪었을 법한 사기 사건은 더 이상 뉴스에서만 접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닌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기꾼들이 존재할까요? 한국에서는 특히 사기가 강력 범죄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수 있다’고 응답한 한국인은 26%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스웨덴에서는 이 비율이 62%로, 두 나라 간 신뢰의 차이가 크게 드러납니다. 신뢰가 결핍된 사회에서는 서로를 경계하고 의심하게 되며, 이는 사기꾼들이 활개 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이러한 사회적 신뢰의 붕괴는 단순한 사기범죄뿐 아니라 우리 일상 속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죠. 서로 의심하는 사회가 될수록 사람들 간의 진정한 관계 형성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왜 남의 말에 쉽게 속을까?

“Fool me once, shame on you; fool me twice, shame on me.” (한 번 속으면 네 탓, 두 번 속으면 내 탓)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한 번 속았을 때는 속인 사람을 비난하지만, 반복해서 속게 된다면 자신의 판단력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사기에 잘 넘어가는 이유는 인간의 본능적인 성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기본적으로 타인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뢰는 사회를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이는 진화적 관점에서도 설명됩니다. 예를 들어,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그가 정말 길을 모른다고 믿고 기꺼이 도움을 주려 합니다. 이러한 신뢰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자연스럽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기초입니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신뢰는 때로는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만듭니다. ‘확증 편향’이라는 심리적 현상 때문인데, 우리가 한 번 사람을 신뢰하게 되면 이후로는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긍정적인 면만을 받아들이고 그에 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지 않는 인지 패턴이 자리잡게 됩니다. 예를 들어,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대규모의 폰지 사기인 ‘버나드 메이도프 사건’은 그가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인해 대규모 피해자들이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투자자들은 그가 제공하는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결과 사기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커졌죠. 신뢰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이 신뢰가 때로는 우리의 판단력을 약화시켜 사기 범죄의 희생자로 만듭니다.


뇌과학적으로 본 속임수의 메커니즘

사람이 속임수에 취약한 이유는 뇌의 작동 방식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뇌에는 ‘거울 뉴런’이라는 신경세포가 존재하는데 이 뉴런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고 그 감정을 이해하게 만듭니다. 이 거울 뉴런은 우리가 타인의 행동에 공감하고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게 해 주는 중요한 부위입니다. 누군가가 웃으면 나도 따라 웃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거울 뉴런’ 덕분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타인과 감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지만, 그 연결이 형성된 후에는 동시에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게 되는 약점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우리의 뇌는 일관성과 패턴을 매우 좋아합니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우리의 기존 믿음과 일치할 때 우리는 그 말을 더욱 진실로 받아들입니다. 특히 권위 있는 인물이나 전문가가 제공하는 정보라면 그들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경향이 있죠. 예를 들어,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전문가가 하는 말은 일반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지곤 합니다. 이러한 뇌의 작동 방식은 사기를 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우리를 속임수에 취약하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명확하고 매력적인 제안일수록 쉽게 신뢰하기보다는 한 번 더 의심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격 유형과 속임수의 관계

성격 유형에 따라서도 사람들이 사기에 얼마나 취약한지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타인에게 의존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의견을 매우 중요시하며 자신보다는 타인의 의견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력을 뒤로하고 타인의 의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속임수에 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타인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워 사기범들에게 쉽게 노려지곤 합니다. 반면에 편집성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을 쉽게 신뢰하지 않으며, 과도한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사기나 속임수에 덜 취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반대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지나친 경계심을 유지해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성격 유형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따라 어떤 상황에서 속임수에 취약한지 인식하는 것이 사기 예방의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속임수에 잘 넘어가는 상황들?

사람들이 속임수에 취약해지는 특정한 상황들이 존재합니다. 그중 첫 번째는 감정적으로 약해져 있을 때입니다. 사람이 스트레스, 불안, 슬픔 등의 감정에 휩싸였을 때는 판단력이 흐려지고, 이런 상황에서 사기성 제안에 쉽게 휘말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본 후 이를 빠르게 만회하려는 욕구가 있을 때 사기성 투자 제안에 넘어가기 쉬운 것처럼요. 두 번째는 시간에 쫓기거나 압박감을 느끼는 상황입니다. 사기꾼들은 종종 시간을 촉박하게 만들거나 급박한 결정을 내리도록 압박하여 충분히 생각할 여유 없이 빠른 결정을 내리게 만듭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감정에 치우쳐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쉽습니다. 세 번째로는 권위 있는 인물이 정보를 제공할 때입니다. 우리 사회는 특히 사회적으로 권위를 가진 사람들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사나 교수, 법률 전문가와 같은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을 듣고 그들의 의견을 신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때로는 이러한 신뢰가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집단 압력 역시 속임수에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다수가 어떤 믿음이나 행동을 따를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흐름을 따라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집단 심리는 특히 대규모 사기 사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개인이 독립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속임수에 속지 않으려면?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보를 접했을 때 그 출처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그 정보를 분석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단순히 권위 있는 사람이나 전문가의 말이라고 해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정보의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자신이 한 번 사기를 당해본 경험이 있다면 그 경험을 교훈 삼아 정보를 다양한 출처에서 검토하고, 크로스체크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판적 사고와 더불어 자신이 어떤 성격 유형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신이 타인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성향이라면이를 인식하고 경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전에 비슷한 사기의 경험이 있다면 타인의 제안에 대해서 주변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러한 자기 인식은 속임수에 대한 방어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속임수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이를 현명하게 피할 수 있는 방법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약력

정신과 전문의 신재현 원장은 현재 강남푸른정신과를 운영 중이다. 계명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으며 인지행동치료, 불안장애치료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저서로는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등이 있으며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상담을 통해 환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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