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은 원자들로 이루어진다. 금 원자를 하나 떼어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만큼 반짝반짝한 금색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금 원자들이 모여서 일정한 개수를 넘어서야 반짝반짝하는 금덩이로 보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노미터 크기로 금 입자를 만들어서 물에 분산시켜 놓고 색깔을 보면 마치 와인처럼 진한 붉은색을 띠고, 크기를 키울수록 보라색으로 변한다. 옛날 사람들은 스테인드 글라스의 색깔을 내기 위해서 일찍부터 금 나노입자를 모르고 써 왔다. 이르게는 4세기에 금과 은 나노입자를 분산시켜 만든 유리컵(“Lycurgus Cup”)이 남아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까닭은 “표면 플라스몬 공명”(surface plasmon resonance)으로 설명한다. 금속 안을 보면 양전하를 띠고 있는 원자핵들이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서로 떨어져 있고, 원자 제일 가장자리의 전자들이 떨어져 나와서 이리저리 흘러 다니면서(“자유전자”) 원자핵들을 서로 잡아당겨서 한 물질로 묶어준다. 금속 입자의 크기를 줄여서 가시광선의 파장과 입자의 크기가 얼추 비슷해지는 시점이 되면, 이 자유전자들은 위아래로 진동하는 가시광의 전기장을 따라서 한쪽으로 쏠렸다가 반대쪽으로 쏠렸다가 하면서 빛을 흡수한다. 30 nm보다 작은 금 입자들은 파란색과 녹색에 해당하는 가시광선을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흡수하고 좀 더 장파장인 붉은색 빛은 반사한다. 따라서 우리가 보기에 금 나노입자는 붉은색을 띠게 된다. 크기를 더 키우면 이제는 붉은빛을 흡수하고 푸른빛은 반사하므로 색깔이 보라색조로 변하게 된다.
작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은 “퀀텀닷”(quantum dot) 또한 나노입자인데, 카드뮴 셀레나이드(CdSe), 카드뮴 설파이드(CdS) 등의 반도체 물질을 나노미터 크기로 줄인 것이다(참고로 2024년 올해 노벨화학상은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고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David Baker 및 알파고를 개발한 DeepMind의 Demis Hassabis와 John Jumper가 받았다. 이 이야기는 다음 호에서 하기로 하자). 금속은 자유 전자가 흘러다니니까 전기가 통해서 도체이지만, 반도체는 전자가 흘러다닐 수 있는 전도성 밴드에 전자를 채우려면 밴드갭 이상의 에너지를 가해 주어야 한다. 간단히는 에너지 크기가 맞는 빛을 쬐어주면 전자가 전도성 밴드로 튀어올라간다.
그런데 나노미터 크기로 입자를 만들면, 이렇게 만들어진 전자와 전자가 빈 자리(“정공”)는 다른 곳에 가지 못하고 입자 내부에 갇혀 버린다. 따라서 입자를 균일한 크기로 만들 수만 있다면 딱 정해진 파장에서 빛을 흡수하고 그 에너지를 다시 내놓는(“발광하는”) 입자를 만들 수 있다. 이제까지 개발되었던 물질들의 흡광 및 발광 스펙트럼을 보면 파장 범위에 비해서 매우 선명한 색깔을 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노벨화학상은 물리학상에 비해서 연구 성과가 산업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삼성전자가 QLED를 상용화하지 않았다면 퀀텀닷에 노벨화학상이 주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QLED에 바로 퀀텀닷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QLED는 하얀색을 내는 백라이트가 그대로 들어가고 퀀텀닷은 기존의 컬러 필터를 대체하는 소재로 쓰는데, 궁극적으로는 OLED처럼 백라이트 없이 퀀텀닷 자체가 전자를 받아서 빛을 내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