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AE QUARTERLY MAGAZINE

VOL.32 SPRING



이용재의 미식에세이

와인과 친해지는 요령




바야흐로 봄이다. 와인 마시기에 좋지 않은 계절이 있겠느냐만, 봄은 은근히 와인과 잘 어울린다. 향긋하면서도 한편 진한 도다리 쑥국, 죽순이며 완두콩을 비롯한 각종 봄 채소는 신대륙의 소비뇽 블랑이나 포르투갈의 비뉴 베르데 등과 같이 먹으면 훨씬 더 맛있다. 비단 양식이나 일식 뿐만 아니라 한식과도 잘 어울리는 와인이 차고 넘친다는 말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하면 와인과 더 친해질 수 있을까? 와인도 술이니 그냥 마시면 그만일 뿐인데 산지와 품종 등이 복잡 다양하게 얽혀있다 보니 첫발을 내디디기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맛있는 술을 그저 바라보며 군침만 삼킬 수는 없는 노릇, 와인과 금세 가까워질 수 있는 요령을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일단 마셔보자

이것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마셔보자. 원칙적으로 온라인 구매가 안되는 와인의 구입처는 크게 세 종류로 꼽을 수 있다. 수입 업체의 대리점과 백화점, 그리고 대형마트이다. 이 세 군데 가운데 아무 곳이나 가서 아무 와인이나 사본다. 예산은 처음이라면 3만원을 넘지 않는 게 좋다. 레드든 화이트든 상관 없고 아무 것도 몰라도 문제 없다. 그저 병에 붙어 있는 딱지를 보고 마음 내키는 대로 골라본다. 쉽지 않다고? 바로 그 장벽을 넘기기 위한 연습이다. 드디어 와인을 골랐다면 집에 가져와 마셔보자. 그리고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거나, 그 이유를 가볍게 생각해보자. 사진을 찍어 놓아도 좋다. 이게 첫 걸음을 내디뎠다. 


  단 와인으로부터 졸업하자

모스카토 다스티 같은 단 와인은 원래 식사의 끝에서 디저트로 마시는 것이다. 그래서 입에 착착 붙기는 하지만 음식을 더 먹고 싶은 욕구는 꺾어 놓을 수 있다. 식사에 곁들이는 와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맛을 갖추고 있어 자연스레 입맛을 돋워준다. 소위 ‘드라이’한 와인에 조금씩 관심을 가져보자. 우주의 별처럼 많은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다.



  화이트 와인에 관심을 가지자 

와인은 음식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그래서 화이트와인이라면 해산물, 레드와인이라면 고기와 짝을 짓는다. 전자는 라임이나 레몬 같은 시트러스류의 맛과 향이, 후자는 와인 껍질의 탄닌이 각각 해산물이나 고기와 함께 먹었을 때 균형을 맞춰줘 만족감을 높여준다. 하지만 와인을 늘 음식과 먹어야 할 필요는 없다. 술만 가볍게 즐기고 싶어질 때 화이트 와인이 딱 좋다. 포도 껍질 없이 빚으므로 탄닌이 적고 도수도 레드에 비해 1도 정도 낮아 안주 없이 편하게 마실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 어리고 싱싱한 맛으로 즐기는지라 숙성을 많이 거치지 않으니 그만큼 가격도 저렴하다. 마트에서 1만원 대를 사더라도 그럭저럭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샤르도네이와 소비뇽 블랑이 화이트 와인의 양대 품종이지만 이 둘 외에도 선택지는 다양하다. 스페인 리오하나 프랑스 론 지방의 화이트, 피노 그리지오나 트레비아노 등의 이탈리아 품종 등을 권한다.


  일단 프랑스는 제쳐 두자

와인을 잘 모르더라도 프랑스가 종주국이라는 사실은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만큼 프랑스를 빼놓고 와인을 이야기 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초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덮어놓고 프랑스부터 이해하려 들었다가는 벅차서 와인을 포기할 수도 있다. 왜 그럴까? 특유의 원산지-품종 연결 제도 때문이다. 프랑스의 와인은 품종이 아닌 지역으로 분류한다. 예를 들어 소비뇽 블랑을 마시고 싶다면 품종의 주요 산지인 상세르나 푸이퓌메의 와인을 찾아야 한다. 사실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대표되는 소위 ‘구대륙’의 와인은 대체로 이처럼 품종이 아닌 주요 산지로 분류해 놓았으므로 초보자가 다 기억하기 쉽지 않다. 꼭 필요하며 언젠가는 거쳐 갈 관문이지만 처음부터 힘을 뺄 필요는 없다. 따라서 직관적으로 지역과 함께 품종을 표기해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신대륙’, 즉 미국, 칠레, 호주 등의 와인을 충분히 마신 뒤 옮겨가도 늦지 않다. 


  반 병짜리를 찾아보자

750ml 와인 한 병의 도수가 13도 안팎이다. 요즘은 낮은 도수가 대세이지만 대략 360ml 소주 한 병이라고 볼 수 있다. 주량에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소주 한 병은 적은 양이 아니다. 와인도 마찬가지라서, 750ml 한 병을 따서 다 마시려 들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럴 때 반 병, 즉 375ml짜리 와인이 요긴하다. 한 병 짜리보다 가격은 살짝 높지만 한 번에 주는 만족감은 똑같다고 생각하면 훨씬 덜 부담스러워진다. 많은 경우 가격도 2만원대 이하로 부담이 적어 마음에 드는 와인을 시도해 보는데 쓸모 있다. 반 병짜리만 무작위로 사다가 찬찬히 마셔보는 것도 이해를 넓히는 데 좋다.


  잔은 적당한 수준으로 갖추자

와인만큼이나 잔의 세계도 끝이 없다. 격식을 따지자면 레드, 화이트, 스파클링 별도의 잔을 갖춰야 하고 품종마다 다르게도 나온다. 이 모두를 갖추기란 쉽지도 않고 공간도 많이 차지하며, 무엇보다 와인잔은 잘 깨진다. 따라서 적절히 타협을 하는 게 스트레스도 덜 받고 와인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다. 일단 초보자들에게는 스템, 즉 다리가 달린 잔을 피하라고 권한다. 비좁은 주방 살림에 짐이 될 확률이 높고 유지관리도 불편하다. 레드와 화이트 공용잔을 두 점 정도 갖춰준다면 구애받지 않고 두루 즐길 수 있다.


  집착을 줄이고 긴장을 덜어내자

와인도 술이니 즐겁기 위해 마셔야 한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너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고르기보다 일단 경험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폭넓게 와인을 접해보자. 세계는 넓고 인생은 짧으며 마실 술은 널렸으니 이번에 산 와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다음에 꼭 괜찮은 걸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따서 마셔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게 술이고 와인이니, 실패도 사실은 재미의 일부이다.


  최소한의 공부를 하자

인류 역사와 참으로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술이다 보니 와인에 관련된 지식과 정보는 실로 엄청나다. 따라서 어느 정도는 공부할 각오는 되어 있어야 한다. 서점에는 실로 많은 와인 관련 서적이 있으니 와인처럼 실패해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구매해 마시며 읽어보자. 어떤 책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약력

이용재 음식 평론가 겸 번역가. 한양대학교와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건축 및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고, 애틀랜타의 건축 회사 tbs 디자인에서 일했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저자로서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미식대담’, ‘조리 도구의 세계’, ‘식탁에서 듣는 음악’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실버 스푼’, ‘뉴욕의 맛 모모푸쿠’, ‘인생의 맛 모모푸쿠’,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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