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오늘은 <어떤,책임> 마지막 방송을 기념하여 2018년부터 올해 2024년까지 소개한 책들 중에서 기억에 남은 책들을 연도별로 한 권씩 일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캘리: 다시 얘기하고 싶은 책들이 정말 많은데요. 그중, 지금 많이들 좋아하시는 책도 있어서요. 이 시간에는 다시 살려보고 싶은 책 위주로 골라봤어요. 2018년에 소개한 책 중에서는 『활자잔혹극』을 꼽아봤습니다. 절판이었다가 최근에 복간이 됐거든요. 이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어요. 아직도 첫 문장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고 있는데요.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가 첫 문장이에요. 결론을 첫 문장에 다 해버리고 소설을 진행시키는 힘도 정말 대단하고요. 여름이니까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불현듯(오은): 저는 김성라 작가님의 『고사리 가방』이 생각나요. ‘조꼬띠’ 기억나세요? 되게 예쁜 말이잖아요. ‘가까이’라는 뜻이고요. 책에 너무 확확 걷지 말고, 발 가까이도 잘 살펴야 한다는 대사가 나오는데요. 많이들 멀리 가야 된다, 높이 봐야 된다고 말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은 가까이에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에요. 2019년은 저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정원 작가님의 『올해의 미숙』이에요. 사실 저한테는 올타임 베스트예요.(웃음) 이번에 다시 보니까 미숙한 것을 능숙하게 만드는 게 삶인 것도 같지만 어떻게 보면 미숙한 것을 미숙한 채로 놔두는 것, 미숙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또 1990년대부터 2000년대를 관통하는 문화를 다시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으니까요.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캘리: 저는 『푸른 눈, 갈색 눈』이라는 책을 꼽았어요. ‘뼈 때리는 책’이라는 주제 때 소개를 했더라고요. 이 책은 읽은 지 정말 오래됐는데 정말로 구체적인 내용들이 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책이에요. 늘 관심을 두는 것이 차별의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요. 미국의 한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급의 학생들을 푸른 눈을 가진 학생과 갈색 눈을 가진 학생으로 나누는 내용이에요. 어느 날은 갈색 눈, 어느 날은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이 더 우월하다는 전제로 하루를 지내는데요. 놀랍게도 짧은 시간 안에 엄청 폭력적인 상황이 펼쳐지죠. 지금까지도 굉장히 의미가 있는 실험 같아요.
불현듯(오은): 2020년으로 갑니다. 2020년은 캘리님부터 소개를 할게요.
캘리: 『인간 없는 세상』을 얘기하고 싶어요. 이 책은 지금 읽어도 너무 좋아요.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 차근차근 다룬 논픽션인데요. 소개한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은 너무나 현재적이에요. 오히려 점점 더 책에서 보여주는 풍경들이 피부에 와 닿는 면이 있습니다.
불현듯(오은): 저는 프랑소와 엄님이 추천하셨던 『여름의 잠수』를 꼽아봤어요. 이 그림책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림책은 왠지 해피 엔딩일 것 같고, 어떤 갈등이나 문제가 있어도 어떻게든 해결해내서 어린이에게 성취감을 주면서 아름답게 끝나야 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다르거든요. 『여름의 잠수』는 빛이 있으면 어둠도, 그림자도 있는 것처럼 삶도 그렇다는 것을 말해요. 그러니까 삶 안의 어두움과 슬픔을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할 때 가장 적절한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2021년 책은 캘리님께서 추천해 주셨고 저도 비슷한 시기에 읽고 너무 좋았던 『마이너 필링스』입니다. ‘마이너 필링스’는 작은 감정들이라고 해석을 할 수도 있겠으나 더 깊숙이 들어가면 소수자의 마음일 수도 있잖아요. 저는 <어떤,책임>의 6년 이상 진행되어 온 시간들이 어쩌면 마이너를 헤아리는 마음들로 가득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어떤,책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책이 『마이너 필링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캘리: 저는 『막두』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림책이고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막두’라는 중년 여성이 주인공이고요. 막두는 10살 때 한국전쟁이 발발해서 전쟁을 피해 북에서 남으로 온 피난민이었어요. 당시 새해 계획 세우기 전에 읽으면 좋을 책으로 추천했는데요. 매일 성실하게 하루를 사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 책이었기 때문이에요.
불현듯(오은): 제가 꼽은 2022년의 책은 이혜미 시인이 쓴 『식탁 위의 고백들』이라는 책이고요. 제가 최근에 신문에 발표한 칼럼 제목이 ‘요리와 글쓰기’였어요. 종일 글을 쓰려고 앉아 있었는데 안 풀린 거예요. 그 날, 작은 기쁨이라도 있어야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괜히 밤에 밑반찬을 만들어 놓고 잔 거죠. 그러면서 글쓰기와 요리가 닮아 있으면서도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쓴 칼럼인데요. 『식탁 위의 고백들』을 다시 읽으면서 그 마음을 많이 되새기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