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미식에세이



아이스크림의 세계

인류는 어찌하여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게 되었을까? 만년설과 얽힌 이야기들이 그럴싸하다. 불타는 로마 시내를 보며 시를 읊었다는 희대의 폭군, 네로 황제가 만년설을 과일 등과 섞어 먹은 것이 아이스크림으로 발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다른 기원설도 만년설 없이는 이야기가 안 된다.  이탈리아 남단 시칠리아 섬의 팔레르모는 한때 아랍 세력의 통치를 받으며 세계 제2의 도시로 전성기를 누렸다. 이때 유입된 음료 샤르바트를 근처의 에트나 산 꼭대기의 만년설로 얼려 먹은 게 아이스크림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랍인들이 시칠리아를 전진기지 삼아 인공 냉동기술을 발명했거나, 마르코 폴로 이전에 중국에서 기술을 들여왔다는 주장까지 있지만 근거는 없다. 


아이스크림의 원리는 흡열 현상이다. 얼음에 소금을 뿌리면 녹는점이 낮아져 다른 식품을 얼릴 수 있게 된다. 과일즙이나 우유, 크림 등을 얼리는 한편 휘저어주면 공기가 섞이면서 아이스크림 특유의 질감을 띄게 된다. 인류는 흡열 현상을 활용해 17세기 후반부터 아이스크림의 원형인 셔벗(프랑스어로는 소르베)이나 그라니타를 만들어 먹었다. 그러다가 1870년대 독일의 엔지니어 카를 폰 린데가 개발한 냉동 기술로 얼음 저장의 부담을 덜어 대량 생산의 기틀을 다졌고, 1926년 냉동고의 출현으로 현대적인 생산 공정에 돌입했다. 

이후 과일즙이나 술 등의 액체에 우유나 크림을 더해 부드러움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켜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아이스크림이 탄생하게 된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의하면 1668년 Iced Cream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1672년 찰스 2세의 판결 문서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1744년에 이르러 Iced Cream이 편의상 Ice Cream으로 정착했다. 유제품을 바탕으로 만드는 아이스크림은 계란 노른자의 첨가 여부에 따라 둘로 나뉜다. 먼저 우유와 크림, 설탕만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면 필라델피아식이다. 1876년의 필라델피아 대박람회를 통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붙은 명칭이다. 18세기 말 초대 미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목요일 정찬에 종종 등장했다. 1974년부터 지금까지도 잘 팔리는 투게더가 필라델피아식이다. 한편 계란 노른자는 지방과 유화제 레시틴으로 유제품에 부드러움을 한 켜 더 덧대어준다. 덕분에 필라델피아 스타일에 비해 유지방 함량이 낮고 수분의 비율이 높더라도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고 프랑스식으로 분류한다. 우유, 크림 설탕을 끓이고 계란 노른자를 더해 익힌 크림 앙글레즈 또는 커스터드가 프랑스식 아이스크림의 바탕이다. 필라델피아식이든 프랑스식이든 잘 얼려야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이 된다. 바탕 혹은 베이스를 얼리는 한편 저어 공기를 불어넣는데, 이때 최대 1/5 정도는 얼지 않고 액체로 남아 있어야 아이스크림이 부드럽게 만들어진다. 공업적인 생산 환경에서는 급속 냉각을 통해 차가움과 부드러움을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잡아 만든다. 


한편 베이스를 얼리며 불어넣는 공기의 비율도 부드러움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공기를 많이 넣으면 아이스크림의 부피도 커지고 그 결과 더 부드러워진다. 이 비율이 부드러움의 척도인데, 오버런이라고 일컫고 백분율로 표기한다. 오버런이 100%라면 원액과 공기의 비율이 1:1이라는 의미다. 오버런과 아이스크림의 가치는 냉정히 따져보면 반비례 관계다. 수치가 높을수록 부드럽지만 그만큼 공기도 많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공기가 많은 아이스크림은 빨리 녹아 맛의 여운 또한 짧다. 따라서 다소 딱딱하더라도 오버런이 낮은 아이스크림이 더 돈 값을 한다. 소위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이 요즘도 공기를 덜 섞었다고 내세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물론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오버런 수치를 높여 부드러움을 극대화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아이스크림 제조업체 카벨에 의하면, 1934년 창업주인 톰 카벨이 구멍 난 타이어 때문에 주저앉은 트럭에 담겨 녹는 아이스크림을 판 것이 시초라고 한다. 일반 아이스크림(영하 15도)에 비해 훨씬 높은 판매 온도(영하 4~6도)가 유별난 부드러움의 비결이다. 조상 격인 빙과 그라니타의 고향이 시칠리아라서 그런지, 이탈리아가 유난히 아이스크림 강국이다. 그라니타는 빙수와 굉장히 흡사한데, 유지방을 더하지 않은 과일주스, 또는 와인(13도 전후)보다 낮은 도수의 술로 만든다. 얼리면서 30분마다 한 번씩 포크로 잘게 부숴 주거나 아예 꽁꽁 얼린 뒤 갈아서 특유의 입자감을 낸다. 


이탈리아에서는 버터를 많이 넣은 빵 브리오슈와 함께 아침상에도 오를 정도다.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인 젤라토는 명칭 자체가 ‘얼렸다’는 뜻이다. 유지방의 비율이 낮아 이를 상쇄하기 위한 설탕의 비율이 높다 보니 결과적으로 밀도가 높은, 쫀쫀한 아이스크림이다. 계란 노른자를 넣지 않아야만 진짜 젤라토라는 주장도 있다. 완전히 얼려 만드는 젤라토와 조금 다른, 세미프레도라는 빙과류도 따로 있다. ‘반만 얼렸다’는 뜻으로 베이스를 휘젓지 않고 틀에 담아 얼린 뒤 썰어 먹는다. 프랑스에서는 크림 앙글레즈를 얼린 아이스크림을 글라세, 유지방을 더하지 않은 과일즙 등을 얼린 빙과를 소르베라 일컫는다. 높은 잔에 담은 과일 칵테일과 아이스크림, 일본식 모형 우산으로 한때 카페 인기 메뉴였던 파르페는 사실 저어 공기를 불어넣지 않고 얼려 단단한 아이스크림을 의미한다. 인도를 비롯한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등의 남아시아에서는 연유로 만든 쿨피를 먹는다. 틀에 넣어 굳히므로 ‘OO바’ 류의 ‘하드’와 비슷하다. 아랍의 디저트 팔루데도 그라니타처럼 아이스크림의 조상격이다.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가는 당면에 설탕과 장미수의 시럽을 섞어 얼려 만든다. 

어떤 아이스크림이든 상온에 두어 온도를 좀 올려준 뒤 먹는 게 좋다. 혀가 마비되지 않아 본래의 맛을 잘 느낄 수 있는 것은 물론, 수분이 녹으면서 액체 상태로 변해 훨씬 더 부드러워진다. 한편 먹고 남은 아이스크림은 냄새가 배지 않도록 붐비지 않는 냉동실에 두는 게 좋고, 먹은 부위에 랩을 밀착시키면 말라 질감이 나빠지는 걸 막을 수 있다.



약력

이용재 음식 평론가 겸 번역가. 한양대학교와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건축 및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고, 애틀랜타의 건축 회사 tbs 디자인에서 일했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저자로서 ‘맛있는 소설’,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미식대담’, ‘조리 도구의 세계’, ‘식탁에서 듣는 음악’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실버 스푼’, ‘뉴욕의 맛 모모푸쿠’, ‘인생의 맛 모모푸쿠’,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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