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현의 마음을 살피는 기술


과소비의 

구덩이에서 벗어나기

자기애성 성격은 다른 말로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르키소스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빠져서 그리워하다 물에 빠져 죽게 된다는 일화가 나르시시즘의 어원입니다. 자기애는 말 그대로 자신을 과도하게 사랑하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하고, 반면에 다른 이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기애가 강한 성격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에 친구나 연인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에 있어서 자기애성 성격의 영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자기애성 성격에 대한 책이나 영상 등에서도 알고 보니 자신의 배우자가, 가족이 자기애성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그렇게 괴로웠던 거구나,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만큼 자기중심적인 성격 성향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종종 문제를 일으킵니다. 여기에서 더 나가서 자기애성 성격장애라는 병도 있습니다. 장애라고 이름이 붙었다는 말은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의 정신 병리의 일종이고, 삶이나 직업적 영역에서 기능의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자기애성 성격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이 문제가 됩니다. 자기애가 왜곡되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을 함부로 대하거나, 모든 상황을 자기중심적으로 처리하니까 관계나 사회생활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면서 저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니까, 사회적 관계를 다 자신의 입장에서 놓고 보며,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배려하고, 맞춰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몸은 어른인데, 마음은 주변 사람들이 다 신경 써주어야 하는 3살 배기 아이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타인의 아주 사소한 비난과 비판도 견디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난은 모두 불합리하고, 허용할 수 없고, 자신에게 맞추어 주어야 만족합니다. 반면에 타인에게 쓴소리나 비판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 점차 사람들이 그들을 기피하게 되죠. 직장에서, 아니면 사회적 관계에서 점차 고립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도 이런 패턴에 지쳐서 떠나가게 되지만, 사람의 성격은 잘 안 바뀌는 법입니다. 힘들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변하려는 노력보다는, ‘이건 부당하고 불합리해!’라는 생각에만 갇혀 지내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점점 더 힘들어지게 됩니다.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분들은 겉으로는 당당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공격받고 비난받을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불만족과 열등감을 가진 이들이 일종의 심리적 방어 기제를 형성한 것이 바로 자기애성 성격입니다. 자존감이나 자기 정체성의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원인으로 성장 과정의 불우한 경험이 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양육자의 학대, 폭력, 방임 등에 노출되면서 심리적 트라우마가 생겨나거나 애정 결핍에 시달렸던 경험들입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 폭력에 대해서 아이가 할 수 있는 시도는 완벽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뿐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높은 성취를 해서 자존감을 지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 받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것이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여기게 되기에 삶은 항상 흔들린다 느낍니다. 또 소수에서는 정 반대의 양육도 자기애성 성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양육의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아이에게 다 맞추어 주는 양육 방식도 건강한 정서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이때도 자신의 삶에서 고난이나 좌절, 비난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기 때문에 자존감이 불안정하게 형성됩니다. 그 외에도 성격 문제의 형성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합니다. 단순히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될 수 없는, 매우 다차원적인 현상입니다. 대표적으로 유전적 요인, 양육 환경, 초기 경험, 그리고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모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자기애성 성격 장애를 가진 이들의 가족 내에서 같은 성격 성향이 더 흔하게 발견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이는 특정 유전자가 이 장애의 발달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런 유전적 성향의 바탕 위에서, 가까이 있는 가족이 자기애성 성격 성향이 강하다면 결국 그들의 문제 해결 방식, 대인 관계의 형식을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애성 성격의 문제를 치료하는 것은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문제의 당사자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변화를 위해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입니다. 우리가 어떤 노력을 통해 변한다는 것은 크게 세 단계를 거칩니다. 먼저 자신의 문제를 잘 인식하고 알고 있어야 하고, 그 다음 그 상황에서 잠시 멈추어 뒤로 물러나서 살펴보고 관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전과 다른 행동을 선택하는 과정입니다. 이 세 과정이 반복적으로 이어져야 변화의 가능성이 생겨나지만, 성격이 변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성격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역사 동안 다듬어진 관점인지라 어느 시점에서 ‘이게 문제다’라고 인정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또 변화하기 위해 노력을 해봐도 지금껏 살아온 삶의 관성에 의해서 허물어지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죠. 그래도 다행히 주변의 권유로, 혹은 큰 깨달음을 얻는 일을 계기로 치료를 오는 분이 계시기는 합니다. 그럴 때 치료는 일반적으로 자기 인식을 증진시키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며, 긴 기간의 상담 치료가 필요합니다. 한두 번의 대화나, 약물 치료를 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가 힘듭니다. 대개 인지행동치료(CBT)가 사용되며, 이는 환자가 자신의 생각과 행동 패턴을 인식하고, 더 건강한 방식으로 그것을 조정하도록 돕습니다. 또한 정신분석적 접근을 통해 자기애적인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을 탐색하고, 환자가 자신의 감정과 취약성을 더 잘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돕기도 합니다. 환자가 자신의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서는 종종 깊은 내면의 불안과 자기비판이 동반되기 때문에, 이러한 내면의 문제들을 안전한 환경에서 탐색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치료자와의 신뢰 관계 형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애성 성격 성향을 가진 분들은 처음에는 아주 예의 바르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다가 치료가 진행되면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어려워지거나,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가 자신을 힘들게 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어하면서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는 자신에게 거슬리는 말 하나로 관계가 깨져 버리기도 합니다.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취약하게 느끼거나 비판받는 것을 매우 힘들어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 과정은 매우 세심하고 점진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결국, 치료의 목표는 환자가 자신과 타인에 대해 더 현실적이고 건강한 관점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이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인 장 샤를르 부슈가 낸 자기애성 성격에 대한 저서에서, 그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절대 화를 내면 안 된다. 분노를 표하면 오히려 부메랑처럼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그들과 완전히 인연을 끊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건이 되면 물리적, 그리고 정서적으로 최대한 거리를 두라는 말이죠. 그들을 대할 때는 초조함, 분노, 조급함 등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내면의 취약성을 극적으로 감추려는 방어 기제 때문에 오히려 감정에 호소하는 행동은 비웃음을 사게 될 뿐이죠. 오히려 담담한 감정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애성 성격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반응할 때 ‘회색 돌’ 처럼 반응하라고 합니다. 감정을 드러낼수록 얽혀 들기 쉽고, 연락을 완전히 끊는 것 또한 그들의 내면의 감정을 자극해, 내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을 대할 때는 그냥 돌처럼 무덤덤하게, 대화에 있어서 재미 없게 반응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버티기’ 방식으로 내내 버티는 것도 힘듭니다. 상대방이 이런 자기애성 성격 성향이 강하고, 자신이 감정적으로 착취당한다고 느낄 때는 연인이라면 헤어짐을, 부부라면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에서의 동료나 상사라면 부서 이동이나 업무 변경을, 혹은 사안의 심각도에 따라서 이직이나 퇴사를 고려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회색 돌이 된 상태로 내내 상대방을 대하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또 노력을 한들, 상대는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조금은 냉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이들과 대화를 한다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아주 세심하게 대화 내용과 수위를 잘 조절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의 욕구를 다 충족시켜 주지는 않되, 또 그들의 기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과 대화를 할 때는 그들에게 현실적인 이득이 되는 것을 전제로 대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대화가 이득이 될 수 있겠다’ 라는 느낌이 들면 대화에 응하게 될 테니까요. 또 대화에서 수비적으로 하되, 경계를 잘 설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신이 손해를 보거나, 정서적으로 타격받는 것을 극히 꺼리기 때문에, ‘저 사람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더 이득’이라는 인식을 줄 필요도 있습니다. 무작정 상담센터, 병원을 간다고 바뀌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냉정하게 상황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면서, 최악의 경우는 가족이더라도 관계를 그만 둘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자기애성 성격의 상대방과 협상을 잘 해야 합니다. 만약 약간의 치료의 가능성이 있다면 즉시 치료를 받게 하고, 일정 기간 이상은 치료를 꼭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때도 막연하게 치료를 받기보다는 얼마간은 이런 치료를 유지를 하자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개는 한 두번 정도 가보고 여러 핑계를 대며 치료를 중단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성격이 바뀌는 데는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립니다. 또 치료를 한다고 해서 초기에 금세 사람이 바뀌는 것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치료를 하더라도 타인과의 관계를 겨우 유지할 수 있을 정도, 이전보다 덜 불안한 정도가 치료의 현실적인 기대 수준일 수도 있습니다.


약력

정신과 전문의 신재현 원장은 현재 강남푸른정신과를 운영 중이다. 계명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으며 인지행동치료, 불안장애치료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저서로는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등이 있으며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상담을 통해 환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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