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미식에세이

초콜릿의 세계

2월 밸런타인데이에나 한 번 생각해 볼까 말까 하지만 초콜릿의 역사는 장구하다. 카카오나무 경작 기록은 기원전 1,100년부터 존재한다. 멕시코와 중앙 및 남아메리카에서 주로 재배했는데 씁쓸한 약용의 걸쭉한 음료였다. 초콜릿이라는 명칭 또한 지역 원주민 ‘나와틀(Nahuatl)’족의 ‘쓴 물’이라는 말 ‘xocol ātl’에서 비롯되었다.

초콜릿의 유럽 전파와 생산 

초콜릿을 유럽에 처음 소개한 장본인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지만 실질적인 전파는 1520년, 아즈텍 왕국을 정복한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의 공이다. 유럽으로 건너가 초콜릿은 설탕과 유제품 등의 지방과 만나 오늘의 형식을 갖추었다. 적도에서 남북으로 20도 사이의 열대 지방이 주요 산지로 서아프리카에서 전체의 2/3가 나오며, 그 가운데 코트 디부아르가 40% 이상을 책임진다.


카카오 콩에서 초콜릿으로

초콜릿은 원래 달지 않다. 원료인 카카오 콩은 떫고 쓴맛이 강해 그냥 먹기도 어려워 가공이 필요하다. 길이가 15~25cm, 둘레가 7.5~10cm에 이르는 카카오 콩깍지 안에는 대략 2.5센티미터 길이의 “콩” 20~40개가 섬유질에 싸여 들어있다. 더운 열대 기후에 이 콩과 섬유질을 함께 발효시키는 것이 가공의 첫 단계다. 2~8일 동안 발효한 콩을 커피보다 낮은 온도에서 볶으면 비로소 과육을 발라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과육을 롤러 사이로 보내 압착하면 코코아 액이 되고, 이를 체로 걸러 코코아 고형분과 지방인 코코아 버터를 분리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초콜릿의 원료가 된다. 

설비의 모양이 소라 껍데기를 닮았다고 해 ‘콘칭’이라 불리는 과정이다. 코코아 액을 굳히면 우리에게 친숙한 판형 초콜릿을 만들 수 는 있다. 하지만 떫고 쓴맛이 지나치게 강한 것은 물론,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부드러움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설탕이나 유고형분, 코코아 버터 등을 더해 균형을 잡아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밀크, 다크, 화이트 초콜릿 등이 갈린다.


다크 초콜릿과 밀크 초콜릿의 차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밀크 초콜릿은 코코아액의 비율이 10%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설탕, 유고형분, 바닐라 향 등의 부재료이다. 덕분에 달고 부드럽지만 초콜릿 본연의 맛과 향은 아무래도 떨어진다. 우유와 설탕을 타면 달고 부드러워 먹기 편하지만 커피의 맛과 향은 옅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코코아 액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초콜릿의 색은 물론 맛과 향 또한 짙어져 다크 초콜릿이 된다. 유고형분을 첨가하지 않으니 ’70% 다크초콜릿‘이라면 코코아 고형분+버터:설탕의 비율이 70:30이라는 의미다. 제조업체마다 조금씩 달리 구분하지만 ‘세미스위트’, ‘비터스위트’ 등, 맛을 짐작할 수 있는 형용사를 붙이니 고르기가 어렵지 않다. 다만 초콜릿의 비율이 높다고 무작정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맛을 찾는다면 60% 이하, 또렷한 개성을 원한다면 70% 수준의 다크 초콜릿을 권한다. 한편 화이트 초콜릿은 맛과 향을 책임지는 코코아 고형분을 포함하지 않는다. 지방인 코코아 버터에 설탕이나 바닐라향 등의 부재료를 더해 특유의 맛을 낼 뿐이다.


섬세한 초콜릿 제작과정 

요즘은 카카오 콩을 들여와 직접 콘칭을 해 초콜릿을 만들기도 한다. 빈 투 바(bean to bar)라 통하는 개념으로 가격대가 높지만 좀 더 신선하고 생생한 맛이 장점이다. 콘칭을 직접 하지 않은 경우는 대규모 생산 업체에서 미리 가공한 커버춰를 ‘템퍼링’이라 불리는 과정으로 가공해 초콜릿을 만든다. 초콜릿의 포장을 벗기면 틀에 닿았던, 문양이 새겨져 있는 윗면이 반질반질한 것을 볼 수 있는데 템퍼링 덕택이다. 2차 가공인 템퍼링은 코코아 버터의 결정 구조를 안정시켜 초콜릿의 질감을 최적화해 주니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다. 템퍼링의 핵심은 섬세한 온도조절로, 일단 온도를 섭씨 45도까지 올려 커버춰를 완전히 녹인 뒤 다시 27도 안팎까지 식히고 또 31도 안팎까지 올려준다. 


초콜릿의 가공 방법 

초콜릿 바가 커버춰의 1차 가공품이라면 트뤼프, 봉봉 등은 2차 가공품이다. 커버춰에 생크림과 버터 등을 더해 녹였다가 식혀 굳히면 말랑말랑한 초콜릿이 되는데 이를 가나슈라 부른다. 입안에서 살살 녹아 쿠션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따온 이름이다. 생크림의 비율에 따라 가나슈의 질감이 달라지고 트뤼프나 봉봉에 쓴다. 트뤼프는 푸아그라(거위 간), 캐비어(철갑상어 알)과 더불어 세계 3대 미식 재료라 일컫는 송로버섯을 닮아 붙은 이름이다. 같은 과정을 거치지만 가나슈를 정육면체로 잘랐을 경우는 보도블럭을 닮아 ’파베’라고 부른다. 카페나 초콜릿 전문점에서 종종 ’생 초콜릿‘이라 이름 붙여 파는 게 트뤼프 또는 파베다. 

봉봉은 맛을 정확한 형태 속에 짜 넣어야 하므로 트뤼프보다 한결 더 높은 수준의 솜씨를 갖추고 있어야 만들 수 있고, 따라서 보다 더 고급 초콜릿이다. 하트, 장미 등 온갖 모양의 틀에 미리 녹인 초콜릿을 부은 뒤 가나슈를 짜 넣어 원하는 형태를 잡거나, 반듯한 육면체로 자른 가나슈 위로 녹인 초콜릿을 부어 얇은 껍데기를 입혀 만든다.


초콜릿과 음료의 조화 

온도 준수 및 음료와의 짝짓기가 초콜릿 음미의 핵심 요소다. 초콜릿은 양으로 만족을 주는 음식이 아니므로 녹여 천천히 음미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20도 내외의 실온에 두었다가 적당한 크기로 잘라 먹어야 코코아버터의 부드러움에 둘러싸인 초콜릿 특유의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음료는 초콜릿과 비슷한 향을 지닌 것이 좋은 짝이다. 가장 잘 어울리는 커피는 중간에서 강하게 볶은 콩의 드립이나 에스프레소가 잘 어울린다. 마데이라와 포트(포르투갈), 셰리(스페인) 등 주정을 더해 도수를 올린 강화포도주나 흑맥주도 좋다. 요즘은 싱글몰트 위스키 또한 검증된 짝짓기로 사랑받고 있다.


초콜릿을 제대로 즐기려면... 

초콜릿의 제 맛을 즐길 수 있는 기간은 4주 안팎인데, 구입 후 2~3일에서 일주일 이내에 먹는 게 좋다. 남은 초콜릿은 섭씨 15~18도 사이의 그늘진 곳(습도 50% 이하)에서 보관한다. 간혹 초콜릿 표면에 하얗게 가루가 앉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온도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코코아 버터의 불안정한 지방 결정이 녹아 표면으로 배출된 것이다. ‘당분이 피어올랐다’는 표현을 쓰는데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약력

이용재 음식 평론가 겸 번역가. 한양대학교와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건축 및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고, 애틀랜타의 건축 회사 tbs 디자인에서 일했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저자로서 ‘맛있는 소설’,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미식대담’, ‘조리 도구의 세계’, ‘식탁에서 듣는 음악’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실버 스푼’, ‘뉴욕의 맛 모모푸쿠’, ‘인생의 맛 모모푸쿠’,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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