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현의 마음을 살피는 기술

과소비의 

구덩이에서 벗어나기

다시 한 해 지나, 새해입니다. 다들 새로운 결심을 하고, 뭔가 해보려고 할 때 ‘그분’이 찾아오기가 딱 좋습니다. 운동을 하나 시작하더라도 운동복, 신발, 새로운 디지털 워치 등을 사야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찾다 보면 ‘지름신’이 왕림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쇼핑을 하다 보니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으로 구매를 하거나, 과몰입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과소비와 쇼핑 중독입니다.


나의 소비 행태가 병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기능입니다. 가끔 어떤 물건에 꽂혀서 오랫동안 검색하고, 물건을 사들이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 모든 경우를 다 병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사기 위해서 찾아보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다른 일을 못하거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인 범위를 넘어서 과도하게 소비하느라 매달 카드빚에 허덕인다면 자신이 하고 있는 쇼핑의 행위는 일반적인 범위를 벗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기준은 지속성입니다. 특정 시기에, 일회성으로 잠깐 이런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지만 이런 상태가 일주일에 여러 번, 한 달에 꽤 많은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면 쇼핑에 과몰입한 상태라고 볼 수 있겠죠. 

모든 중독 행위는 회피의 기능이 있습니다. 현재 내 삶에 불만족이 가득하고, 스트레스로 터지기 직전의 상태일 때 그 고통을 마주하고 싶지는 않아서, 피할 수 있는 다른 것에 몰두하는 겁니다. 적어도 거기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생각을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쇼핑뿐만이 아니라 술, 도박, 게임, 일 중독 모두 기저에는 같은 동기가 숨어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삶에서는 만족할 만한 순간이 결여돼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쇼핑을 하고, 구매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의 아주 작은 만족이라도 얻으려고 하는 심리가 있는 거죠. 

우리 머릿속에는 중독과 관련된 보상 회로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뭔가 필요할 때, 그것을 만족시키는 행위를 하면 금세 그 갈망이 해소됩니다. 중독 행위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관여하는데, 중독 행위를 할 때 도파민이 올라갔다가, 시간이 지나면 떨어집니다. 그런데 중독 행위가 반복되면 도파민이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집니다. 떨어진 도파민은 초조감, 불만족감, 처지는 기분 등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니까 더 빨리, 더 강한 방법으로 도파민을 올려야 한다고 뇌가 명령을 하기 시작하죠. 그래서 중독 행위가 더 부추겨집니다. 하지만 중독 행위를 하고, 뇌의 중독 회로가 활성화되면서는 점점 더 큰 만족을 원하게 됩니다. 뇌는 이전에 짜릿한 경험을 하고 나면, 이후에는 그보다 약한 자극에는 잘 반응하지 않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무리해서 더 비싼 물건을 사지만,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거나 오히려 예전의 소비보다 더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쇼핑 중독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더 큰 만족이 아니라, 공허감에 허우적댈 수밖에 없습니다. 

제임스 월먼이라는 칼럼니스트가 소비에 치우친 현대의 소비 현상을 <과소유 증후군>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쇼핑을 과하게 하는 행동을 중독 질환으로 보기보다 사회 문화적 분위기와 연결된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보는 것이죠. 자신의 경제적 상황이 좋든 나쁘든 간에, 물질을 더 많이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 불안, 분노와 같은 증세를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막상 물건을 구매하면 할수록 더 공허해집니다. 현대인의 정신적 어려움을 다룰 때 SNS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SNS를 보면 다들 새로운 아이템, 자동차, 옷, 여행 등 인간의 질투심을 유발하는 사진들이 자꾸 올라 오지만, 실은 SNS는 그 사람이 가장 즐겁고, 좋은 순간의 사진을 올리는 법입니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경계하지 않으면 ‘나 말고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사는구나. 저 사람들의 일상은 저렇게 화려하구나.’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SNS는 그 사회 집단에서 열등하고 소외된 것 같다는 불안감을 부추기게 되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즉각적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를 하게 됩니다.

YOLO(You Only Live Once의 약어)라는 단어가 한때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냥 써버리고 말자, 인생 뭐 있어?’ 라는 심리죠. 그런데 사실 인생의 질은 쇼핑의 만족감으로 결정되지도, 한 순간의 갈증 해소로 좌우되지 않거든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소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서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소비에 내몰리게 되고, 소비를 할 수 있는 정도가 주관적인 삶의 질이나 만족감에 큰 영향을 미치게 돼버렸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원하는 대로 누리며 살 수는 없고, 현대 사회는 오히려 빈부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경제적, 문화적 양극화도 심해집니다. UNIST 이채호 교수 연구팀이 예전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경제적 환경에 따라 삶의 만족감에 대한 기준도 크게 달라진다고 합니다. 부자는 경험을 중요시하고, 가난한 사람은 물건을 구매할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낍니다. 미국의 사립대 학생일수록 물질적 소비보다 경험 소비에 더 많이 의미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월 소득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일수록 물질의 소유나 소비보다는 경험을 더 중시했다고 하고요. 역설적이지만 경제적 불안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아끼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즉흥적인 소비에 노출된 가능성이 더 높아집니다. 이렇게 사회의 격차는 더 커지지만, 사회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물질적 소비를 부추기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소비는 아주 잠깐의 만족감만 줄 뿐이고, 금세 다시 소비를 원하게 됩니다. 

과하게 소비하고, 충동적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관성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모든 중독 행위의 치료가 비슷하지만, 일단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쇼핑 중독 자체만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미국의 통계를 보면 쇼핑 중독 행위에서 강박증의 유병률은 12.5%에서 30% 정도입니다. 즉 잦은 쇼핑 행위도 강박증의 증상 중 하나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쇼핑을 반복하면 우리의 행복감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쇼핑 후의 공허감, 불만족스러운 느낌이 더 커지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우울감, 불안감으로 이어지죠. 우울하니까 쇼핑하고, 또 쇼핑하고 나니까 더 우울해지는 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다 보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기분의 문제들도 일어나게 됩니다. 우울증으로 시작한 쇼핑 중독이라면, 그 기저에 깔려있는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이 나아지지 않으면 쇼핑 행위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뿐이거든요. 그래서 과한 소비가 이어진다면 정신건강의학과나 심리 센터 등을 방문해서 평가받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중독 문제에 대해서 약이 개발됐지만, 아직 극적으로 중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중독 회로가 이름에 ‘중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그렇지, 실은 우리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노력해서 얻게 되는 성취감과도 관련이 있거든요. 이 부분을 약을 통해 차단해 버리게 되면, 일상의 즐거움이나 만족감도 사라지게 되기에 그런 약은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하는 약을 사용하면 무엇인가를 샀을 때의 순간적인 만족감을 덜 느끼게 해서, 그 행위의 빈도가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면 중독 행위를 조금 비껴갈 수 있습니다. 또, 쇼핑을 과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불쾌하고, 불편한 마음, 혹은 우울한 기분에 대해서 약물 치료를 하게 되면, 행동의 동기가 줄어들게 되는 셈입니다.

때로 약물 치료도 필요하겠지만, 자신이 쇼핑을 하는 과정을 찬찬히 상담을 통해 살펴보는 일도 아주 중요합니다. 쇼핑 행위를 촉발하게 되는 요인(trigger)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혹은 오늘따라 불쾌한 기분이 원인이고, 음주도 행동의 억제력을 잃게 만드는 탓에 문제가 됩니다. ‘오늘은 꼭 참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술을 마시고 나면 폭발해 버립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취약한 때, 취약한 날을 잘 파악하고 있으면 기본적으로 조심하게 됩니다. 촉발 요인이 있다면, 눈에 쉽게 띄는 냉장고 문 앞이나 책상 앞에 이런 관련된 내용을 적어놓는 것도 알아차리는 데 도움이 되겠죠. 알게 되면 조심을 하게 되고, 조심성이 생기면서 10번 중 1번이라도 참아낼 수 있으면 뇌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요. 

또 쇼핑을 하는 과정은 한 번에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마음을 먹고, 앱에 들어가고, 결제를 하고, 물건을 기다리는 등의 각 과정마다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타이밍은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번거로워질 수 있는 전략을 상담에서 논의하기도 합니다. 내가 온라인 쇼핑을 너무 과하게 한다면 그 사이트를 탈퇴하고 앱을 지우거나, 결제를 일부러 좀 더 번거롭고 복잡하게 하는 식으로 쇼핑을 하는 과정을 지연시키면서, 충동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줄이는 것이 사소하지만 중요합니다. 우리가 관성처럼 하는 행동에 약간의 걸림돌만 생겨도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는 참 많으니까요. 

중독 행위는 다른 중독으로 쉽게 옮겨갈 수 있습니다. 이걸 교차 중독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건강하게 중독될 수 있는 것에 빠지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도파민이 꼭 쇼핑을 해야지만 증가되는 것은 아니라, 일상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중독 회로를 활성화 시킬 수 있습니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흥밋거리나 즐거움의 요소가 있는지 두루 경험을 통해 탐색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몰두할 수 있는 운동이나, 다른 취미거리를 찾아보는 게 필요하겠죠.

쇼핑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내가 삶을 대하는 다른 관점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쇼핑 중독에 빠지게 되면 세상의 모든 관심사가 나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물건에만 집중되거든요. 당시에는 이 물건을 사서 내가 만족할 수 있을까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서 시야가 아주 좁아집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항상 머물던 곳이 아니라 교외로 나가보고, 새로운 곳에 머물러 보거나,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 여행을 가는 등의 관점 전환이 필요합니다. 또, 중독의 관성으로 꽂히면 구매하고, 꽂히면 구매하는 식의 빠른 반복이 중독 행위를 부추기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천천히 사는 삶의 형태를 가져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과열된 삶이라면 일부러 얼마간 휴가를 내고 일상의 속도를 천천히 늦추어 보는 것이죠.


약력

정신과 전문의 신재현 원장은 현재 강남푸른정신과를 운영 중이다. 계명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으며 인지행동치료, 불안장애치료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저서로는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등이 있으며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상담을 통해 환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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