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비 행태가 병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기능입니다. 가끔 어떤 물건에 꽂혀서 오랫동안 검색하고, 물건을 사들이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 모든 경우를 다 병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사기 위해서 찾아보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다른 일을 못하거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인 범위를 넘어서 과도하게 소비하느라 매달 카드빚에 허덕인다면 자신이 하고 있는 쇼핑의 행위는 일반적인 범위를 벗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기준은 지속성입니다. 특정 시기에, 일회성으로 잠깐 이런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지만 이런 상태가 일주일에 여러 번, 한 달에 꽤 많은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면 쇼핑에 과몰입한 상태라고 볼 수 있겠죠.
모든 중독 행위는 회피의 기능이 있습니다. 현재 내 삶에 불만족이 가득하고, 스트레스로 터지기 직전의 상태일 때 그 고통을 마주하고 싶지는 않아서, 피할 수 있는 다른 것에 몰두하는 겁니다. 적어도 거기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생각을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쇼핑뿐만이 아니라 술, 도박, 게임, 일 중독 모두 기저에는 같은 동기가 숨어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삶에서는 만족할 만한 순간이 결여돼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쇼핑을 하고, 구매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의 아주 작은 만족이라도 얻으려고 하는 심리가 있는 거죠.
우리 머릿속에는 중독과 관련된 보상 회로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뭔가 필요할 때, 그것을 만족시키는 행위를 하면 금세 그 갈망이 해소됩니다. 중독 행위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관여하는데, 중독 행위를 할 때 도파민이 올라갔다가, 시간이 지나면 떨어집니다. 그런데 중독 행위가 반복되면 도파민이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집니다. 떨어진 도파민은 초조감, 불만족감, 처지는 기분 등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니까 더 빨리, 더 강한 방법으로 도파민을 올려야 한다고 뇌가 명령을 하기 시작하죠. 그래서 중독 행위가 더 부추겨집니다. 하지만 중독 행위를 하고, 뇌의 중독 회로가 활성화되면서는 점점 더 큰 만족을 원하게 됩니다. 뇌는 이전에 짜릿한 경험을 하고 나면, 이후에는 그보다 약한 자극에는 잘 반응하지 않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무리해서 더 비싼 물건을 사지만,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거나 오히려 예전의 소비보다 더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쇼핑 중독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더 큰 만족이 아니라, 공허감에 허우적댈 수밖에 없습니다.
제임스 월먼이라는 칼럼니스트가 소비에 치우친 현대의 소비 현상을 <과소유 증후군>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쇼핑을 과하게 하는 행동을 중독 질환으로 보기보다 사회 문화적 분위기와 연결된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보는 것이죠. 자신의 경제적 상황이 좋든 나쁘든 간에, 물질을 더 많이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 불안, 분노와 같은 증세를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막상 물건을 구매하면 할수록 더 공허해집니다. 현대인의 정신적 어려움을 다룰 때 SNS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SNS를 보면 다들 새로운 아이템, 자동차, 옷, 여행 등 인간의 질투심을 유발하는 사진들이 자꾸 올라 오지만, 실은 SNS는 그 사람이 가장 즐겁고, 좋은 순간의 사진을 올리는 법입니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경계하지 않으면 ‘나 말고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사는구나. 저 사람들의 일상은 저렇게 화려하구나.’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SNS는 그 사회 집단에서 열등하고 소외된 것 같다는 불안감을 부추기게 되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즉각적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를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