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AE QUARTERLY MAGAZINE

VOL.33 SUMMER



이용재의 미식에세이


이용재의 미식에세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겠지만, 빵이라고 다 같은 빵이 아니다. 밀가루에 물을 더해 반죽하지만 모든 빵이 효모를 쓴  발효를 거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밀가루, 물, 소금과 효모의 기본 재료만 쓴 빵과 버터나 계란 등을 더해 만든 빵은 맛과 질감이 사뭇 다르다. 빵의 인기가 절정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요즘,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빵의 세계를 재료와 만드는 원리에 따라 간략히 분류해 보았다.  


기본 빵(Lean Bread)

빵은 단 네 가지 재료, 즉 밀가루와 물, 소금과 효모만으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든 빵은 특유의 쫄깃함과 담백함이 두드러지고 ‘식사빵’ 이라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단맛도 없고 담백해 밥 대신 끼니로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치아바타 (Ciabatta)

프랑스에 바게트가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치아바타가 있다. 넙죽한 모양 덕분에 ‘슬리퍼’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는데, 밀가루 대비 높은 수분 비율 덕분에 반죽이 그렇게 넓적하게 퍼진다. 우리에게도 익숙한지라 이탈리아의 고전 빵 같지만 1982년 아르날도 카발라리가 고안해 냈다. 

 

바게트 (Baguette)

생김새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같은 반죽이더라도 1차 발효 후 빚는 모양에 따라 바게트, 에피(epi, 벼이삭), 불르(boule, 반구)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따라서 바게트라 더 특별할 이유는 없고, 되려 모양 탓에 먹기가 까다롭다고도 볼 수 있다. 바삭한 껍데기에 비해 속살이 많지 않아 금방 마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바게트는 반나절이면 제맛을 잃으니, 프랑스 사람들이 매일 빵을 사는 이유가 있다.

식빵(Bread)

두 번의 진화를 거쳐 오늘날의 모양과 질감을 갖추었다. 첫 번째는 샌드위치빵으로부터 이루어진 형태의 진화이다. 수분 60퍼센트대의 반죽에 우유, 버터 등을 더한 반죽을 틀에 넣고 뚜껑을 덮어 구우면 단면이 직사각형인 빵이 된다. 18세기 유럽에서 이런 샌드위치빵이 등장했는데 특히 미국에서는 ‘풀먼 로프(Pullman Loaf)’라는 별명이 붙었다. 납작하고 평평해 기차의 좁은 식당칸에서 쓰기 편해 미국의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인 조지 풀먼이 처음 자신의 ‘풀먼 기차’에서 쓰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이런 식빵이 일본에서 질감 위주로 두 번째 진화를 겪었다. 밀가루나 찹쌀가루로 쑨 풀인 탕종(湯種)을 소량 더해 반죽을 안정시키고 수분을 좀 더 잘 품을 수 있게 만들었다. 덕분에 소위 ‘닭가슴살’처럼 결대로 찢어지는 조직의 빵이 우리나라로 건너와 일본 명칭 ‘쇼쿠팡(食パン)’ 그대로 자리를 잡아 식빵이 되었다.

부재료 첨가 빵(Enriched Bread)

밀가루, 효모, 소금, 물의 기본 재료에 계란이나 설탕, 버터 등 부재료를 더한 빵을 부재료 첨가 빵이라 구분한다. 첨가하는 부재료는 지방 위주이므로 궁극적으로 글루텐의 발달을 저해한다. 덕분에 부재료 첨가 빵은 기본 재료 빵에 비해 훨씬 더 부드럽다.


브리오슈(Brioche)

버터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빵이다. 식빵 같은 부재료 첨가빵에 비하면 엄청난, 밀가루 대비 85%가 넘는 버터를 더한다. 거기에 계란까지 더하니 글루텐이 맥을 전혀 못 춰, 빵의 조직은 부드럽다 못해 거의 푸석할 정도로 결이 낱낱이 흩어진다. 원래 풍부한 빵이지만 계란물에 적셔 프렌치토스트를 해 먹으면 더 맛있다.

브리오슈보다 더 많은 버터를 밀가루와 짝짓고 싶다면 둘이 물리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 이를 위한 요령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밀가루에 차가운 버터를 비벼 넣어 공존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비스킷이나 스콘, 파이 등에 쓰는 방식으로 밀가루에 비벼 넣은 버터가 녹지 않은 상태에서 물이나 우유 등을 더해 반죽을 만든다. 이를 구우면 버터의 수분이 녹으면서 약간의 켜와 풍성함을 남긴다. 페이스트리(Pastry)의 기본 원리이다. 두 번째 방식은 이보다 좀 더 난도가 높다. 밀가루 반죽과 버터를 별도의 켜로 만들어 겹친 뒤 접었다 펴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한다. 그 결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밀가루와 버터의 켜가 만들어지고, 구우면 버터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지방을 머금은 풍성한 밀가루 반죽의 켜만 남는다. 크루아상을 만드는 요령이다. 크루아상은 프랑스 빵의 대명사 같지만 사실 고향이 비엔나로, 사촌 격인 뺑 오 쇼콜라 등을 한데 묶어 비에누와즈리(Viennoiserie)라 일컫는다. 페이스트리 반죽에 효모를 첨가하고 발효를 통해 부풀리기까지 하는 빵을 일컫는 용어이다. 

밀가루 반죽은 조직에 공기방울을 불어넣어야 먹기 편해진다. 그래서 효모로 발효를 시키는데 다른 방법도 있다. 산과 염기의 화학 반응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발효빵과 달리 기포가 순식간에 발생해 반죽을 부풀리므로 즉석빵(Quick Bread)라 일컫는다. 빨리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대신 발효의 맛을 얻을 수 없으므로 즉석빵은 일종의 궁여지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베이킹소다와 베이킹파우더 같은 팽창제가 쓰인다.

팬케이크(Pancake)

믿거나 말거나 팬케이크도 즉석빵으로 분류된다. 풀처럼 묽은 반죽을 만들어 팬에 올리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 반죽이 부풀어 오른다. 같은 반죽을 와플 틀에 넣고 구우면 와플이 된다. 심지어 붕어빵 틀에 넣고 구우면 붕어빵도 될 수 있다. 그렇다, 붕어빵도 팽창제는 쓰지 않지만 일종의 즉석빵이다.


머핀(Muffin)

원래 머핀은 번철에 구워 먹는 납작빵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잉글리시 머핀이 원형이었으나 언젠가부터 컵케이크 틀에 구운 즉석빵으로 자리를 잡고 뿌리를 굳건하게 내렸다. 계란과 버터를 풍성하게 쓴 묽은 반죽(batter)을 틀에 부어 굽는다.

약력 

이용재 음식 평론가 겸 번역가. 한양대학교와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건축 및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고, 애틀랜타의 건축 회사 tbs 디자인에서 일했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저자로서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미식대담’, ‘조리 도구의 세계’, ‘식탁에서 듣는 음악’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실버 스푼’, ‘뉴욕의 맛 모모푸쿠’, ‘인생의 맛 모모푸쿠’,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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